구로동의 밤 – 나훈아 –
나훈아 ‘구로동의 밤’이 실린 1970년 음반
SEL-1-755의 앞면에는 정훈희의 ‘그 사람 바보야’, ‘언니에게 물어봐’를 시작으로 윤영철의 ‘언약’, 김상희의 ‘파란손수건’, 태준의 ‘말한마디 못하고’, 유기오의 ‘당신을 부르며’가 배치됐다. 뒷면은 나훈아의 ‘노방초’와 ‘구로동의 밤’에 이어 이영숙의 ‘잊으려 해도’, 은수란의 ‘연인’, 김훈의 ‘이것이 사랑인가요’, 유지성의 ‘사랑의 역사’로 이어졌다.
현대 디지털 복원판도 이 순서를 그대로 전하고 있으며 ‘구로동의 밤’을 나훈아의 곡으로 명확히 수록한다. 다만 디지털 복원 음반의 등록 시기는 원곡의 최초 발표일이 아니므로, 1970년 원반의 연대는 성음 카탈로그와 실물 LP 계열 자료를 우선해서 보는 편이 정확하다. 벅스 디지털 복원 음반 정보
1969년에는 박일남의 ‘구로동의 밤’이 있었다
나훈아의 녹음보다 앞선 기록도 남아 있다. 성음의 음반 목록에는 SEL-2-172 김세레나·박일남 《꽃타령 / 구로동의 밤》이 1969년 4월 10일 음반으로 기재돼 있다. 이 음반의 뒷면 첫 곡이 박일남의 ‘구로동의 밤’이었다. 성음 제작소 음반 카탈로그
별도의 음반 수집 자료에서도 이 LP의 수록 순서는 앞면에 김세레나의 ‘꽃타령’, ‘초립동’, ‘꼴망태목동’ 등을 두고, 뒷면 첫머리에 박일남의 ‘구로동의 밤’을 배치한 것으로 확인된다. 김세레나·박일남 1969년 음반 수록 정보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유물 목록에도 ‘김세레나 / 꽃타령 / 구로동의 밤’ 음반이 1969년 자료로 등록돼 있다. 박물관 목록에는 1969년 9월 20일로 적혀 있어 성음 카탈로그의 4월 10일과 날짜 차이가 있지만, 어느 기록을 따르더라도 나훈아의 1970년 수록보다 앞선다. 따라서 나훈아를 ‘구로동의 밤’의 최초 가창자로 단정해서는 곤란하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유물 목록
다만 공개된 자료만으로 박일남의 1969년 녹음과 나훈아의 1970년 녹음이 작사·작곡과 가사까지 완전히 같은 작품인지 원반 라벨 수준에서 교차 확인되지는 않는다. 제목과 음반 계보만으로 동일곡이라고 밀어붙이기보다, 앞선 동명 녹음이 존재한다는 사실까지 분명히 해두는 편이 정확하다.
‘구로동의 밤’ 가사에 남은 1970년 서울의 장소
나훈아가 부른 ‘구로동의 밤’의 가사는 상당히 구체적인 공간을 갖고 있다. 화자는 그대를 찾아 구로동의 변두리 다방으로 왔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다. 불이 꺼진 종점, 텅 빈 다방의 자리, 전축에서 흐르는 음악, 운행을 마친 버스가 차례로 등장한다. 벅스 ‘구로동의 밤’ 곡 정보
두 번째 장면에서는 예전에 함께 차를 마셨던 다방을 다시 찾는다. 탁자와 자리는 그대로지만 상대는 없다. 노래는 구로동을 단순한 지명 장식으로 쓰지 않고, 기다림과 회상이 일어나는 구체적인 생활 공간으로 놓는다. 그래서 이 곡에는 항구나 고향을 배경으로 한 당시 트로트와는 조금 다른 도시 변두리의 정경이 남아 있다.
같은 음반에서 만난 정훈희와 나훈아
SEL-1-755의 구조에서 나훈아는 ‘노방초’와 ‘구로동의 밤’ 두 곡을 맡았다. 앞면 첫 두 곡은 정훈희가 부른 ‘그 사람 바보야’와 ‘언니에게 물어봐’였다. 같은 음반에 두 가수의 노래를 각각 두 곡씩 배치한 뒤 다른 여러 가수의 신곡을 섞는 방식은 당시 오아시스 계열 합집 LP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구성이다.
후대에는 이 음반의 표제가 《그 사람 바보야 / 언니에게 물어봐》로 적힌 재발매판도 유통됐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이런 제목의 정훈희 음반을 1970년 7월 25일 자료로 소장하고 있으며, 중고 LP 자료에서도 같은 표제의 재발매판이 확인된다. 즉 같은 수록곡을 가진 음반이라도 재킷 전면에 무엇을 내세웠는지가 판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사람 바보야 / 언니에게 물어봐》 재발매 LP 정보
시간이 지나 다시 보는 ‘구로동의 밤’
‘구로동의 밤’은 나훈아의 1970년 수많은 수록곡 가운데 한 곡으로만 보면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원반을 거슬러 올라가면 1969년 박일남의 동명 녹음이 먼저 나타나고, 다시 1970년 나훈아의 목소리로 오아시스 합집 LP에 등장한다.
그와 동시에 가사에는 다방과 종점, 막차가 끊긴 듯한 구로동의 밤이 구체적인 장소로 남는다. 기록으로 보면 재수록과 동명이곡 여부를 따져야 하는 곡이고, 노래 안으로 들어가면 한 사람이 약속 장소에 홀로 남은 짧은 도시의 이야기다. 두 층위가 함께 있을 때 ‘구로동의 밤’의 위치가 더욱 분명해진다.
정훈희의 ‘언니에게 물어봐’는 1970년 7월 25일 성음 SEL-1-755 《그 사람 바보야 / 노방초》의 앞면 두 번째 곡으로 실렸다. 이후 같은 해 남국인 작곡 제3집에도 다시 수록돼, 한 해 안에 서로 다른 오아시스 음반을 건너간 기록이 확인되는 곡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