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못견디게 – 이미자 –

이미자의 ‘추억은 못견디게’는 1970년 지구레코드에서 나온 김인배 작곡집 ‘추억은 못견디게’의 첫 곡이자 음반을 대표하는 노래다. 현재 벅스의 복각 음원에서도 10곡 가운데 첫 번째이자 타이틀곡으로 등록돼 있다.

노래 속에는 떠난 사람을 붙잡지 못한 뒤 남겨진 기억이 있다. 창가에 비가 내리고, 지나간 사랑이 다시 마음속으로 밀려든다. ‘추억’과 ‘미련’, 그리고 비가 한데 엮여 있는 전형적인 이별가이지만, 이미자가 이 노래를 부른 시점은 그의 가수 인생에서 결코 조용한 때가 아니었다.

1970년 이미자는 이미 한 시대를 대표하는 가수였고, 그해 연말 MBC 10대 가수 청백전에서도 최고 인기가수에 올랐다. MBC가 훗날 정리한 역대 기록에도 이미자는 1967년부터 1970년까지 최고 인기가수로 이어지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추억은 못견디게’가 세상에 나오던 때

지구레코드 음반번호 자료에는 JLS-120386 김인배 작곡집 ‘추억은 못견디게’가 1970년 음반으로 기록돼 있다. 해당 자료에는 제작일을 1970년 1월 1일로 적고 있다.

실물 LP 판매자료에서도 음반 구성은 뚜렷하다. 앞면에는 이미자의 ‘추억은 못견디게’, ‘내사랑 한번가고’, ‘못잊을 내사랑’, ‘그사람은 떠나가고’가 연달아 놓이고, 마지막에 조영남의 ‘잊지못할 그 목소리’가 들어갔다. 뒷면에는 신지훈의 세 곡과 펄시스터즈, 샌디한의 노래가 담겼다.

따라서 ‘추억은 못견디게’는 이미자의 독집이라기보다 김인배라는 작곡가를 중심으로 여러 가수가 참여한 작곡집의 대표곡이었다.

음반의 Side 1 첫 곡이라는 자리도 중요하다. 당시 LP는 앞면 첫 곡과 음반 표제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고, 실제로 이 음반도 이미자의 ‘추억은 못견디게’를 전면에 내세웠다.

정두수와 김인배가 만든 ‘추억은 못견디게’

‘추억은 못견디게’는 정두수 작사, 김인배 작곡으로 전해진다. 당시 음반을 보존해 소개한 자료에도 이 조합이 명시돼 있다.

정두수는 이미자와도 인연이 깊었다. 대표적인 ‘흑산도 아가씨’를 비롯해 ‘그리움은 가슴마다’ 등 이미자의 주요 레퍼토리에 그의 노랫말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인배 역시 이미자와 처음 만난 작곡가는 아니었다. 1960년대부터 ‘참나뭇골 처녀’, ‘보슬비 오는 거리’ 등 여러 김인배 작곡집에 이미자의 노래가 실렸다. 1967년 ‘참나뭇골 처녀’가 당시 주간한국 인기가요 순위에 올랐던 기록도 남아 있다.

‘추억은 못견디게’는 그런 두 사람의 작업이 1970년으로 이어진 사례 가운데 하나였다.

이미자는 그때 어디에 서 있었나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이미자는 1960년대에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여자의 일생’ 등을 연이어 남겼다.

따라서 1970년의 이미자는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가수가 아니었다.

MBC의 역대 자료를 보면 이미자는 1967년 ‘엘레지의 여왕’, 1968년 ‘여자의 일생’에 이어 1970년에도 ‘그리움은 가슴마다’로 최고 인기가수에 기록돼 있다. 1970년 10대 가수 명단에는 이미자와 함께 배호, 최희준, 이상열, 김부자, 정훈희, 한상일, 최정자, 나훈아, 펄시스터즈 등이 자리했다.

이 기록은 ‘추억은 못견디게’라는 한 곡의 히트 여부와는 구별해야 한다.

현재 확인되는 자료만으로는 이 노래 자체의 당시 방송순위나 판매량을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곡이 발표된 1970년에 이미자가 여전히 가요계 최상위권의 가수였다는 사실은 당시 수상 기록으로 분명하게 확인된다.

‘추억은 못견디게’에 담긴 이야기

가사는 아주 간결한 장면에서 시작한다.

떠난 사람을 생각하는 화자 앞에 보슬비가 내리고, 잊고 있던 기억과 미련이 다시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아무리 빌어도 결국 상대는 떠났으며, 창가에는 사랑의 눈물과 추억의 눈물만 남는다. 현재 벅스에도 당시 노랫말이 남아 있다.

특히 첫 절의 중심이 ‘추억’이라면 뒤이어 등장하는 말은 ‘미련’이다.

사람은 이미 떠났는데 기억은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제목도 ‘추억을 잊지 못한다’가 아니라 ‘추억은 못 견디게’이다. 추억 그 자체가 화자를 견디기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 표현돼 있다.

비가 내리는 창가라는 공간도 노래 전체를 감싼다. 거대한 사건이나 극적인 사연보다는, 비 오는 날 문득 다시 살아나는 기억 하나에 집중한 노랫말이다.

이 음반에 담긴 이미자의 네 노래

이 음반의 Side 1에서 이미자는 네 곡을 연달아 불렀다.

첫 곡 ‘추억은 못견디게’ 다음에는 ‘내사랑 한번가고’, ‘못잊을 내사랑’, ‘그사람은 떠나가고’가 이어진다.

네 곡에는 공통적으로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이라는 소재가 반복된다.

‘내사랑 한번가고’에서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고, ‘못잊을 내사랑’에서는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랑을 노래한다. ‘그사람은 떠나가고’에서는 함께하자고 약속했던 사람이 떠난 뒤 홀로 별과 달을 바라본다.

그래서 Side 1의 이미자 네 곡을 이어 들으면 한 곡씩 완전히 떨어진 작품이라기보다, 사랑과 이별·기다림·추억이라는 비슷한 정서를 여러 장면으로 변주한 작은 묶음처럼 들린다.

음반 뒤편에는 전혀 다른 색깔의 가수들이 등장한다. 신지훈의 ‘빗속을 가네’와 ‘그사람 별은’에는 실물 LP에 ‘영화주제가’라는 표기가 있고, 샌디한의 ‘산까치’에는 ‘연속극 주제가’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한 장의 작곡집 안에 이미자의 전통가요와 영화·방송 주제가, 젊은 가수들의 목소리가 함께 들어간 구성이다.

김인배가 바라본 1970년 무렵의 가요계

김인배는 훗날 자신의 지구레코드 시절을 돌아보며 음반사 측에서 트로트 계열의 작품을 요구했던 상황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이 원래 잘하던 음악적 스타일과 음반사가 요구했던 방향 사이에 차이가 있었고, 당시 작업에 아쉬움이 있었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같은 회고에서는 김인배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 히파이브, 준시스터즈, 펄시스터즈, 조영남 등 새로운 세대의 음악인들과도 폭넓게 작업했다고 전한다.

‘추억은 못견디게’ 음반의 조금 독특한 구성도 이런 김인배의 활동 폭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한쪽에는 이미자가 있고 다른 쪽에는 신지훈과 펄시스터즈가 있다. ‘산까치’를 부른 샌디한도 등장한다. 전통적인 가요와 새로운 감각의 가수가 같은 작곡가의 이름 아래 한 장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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