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는 천리 – 홍이주 –
홍이주 ‘당신과 나는 천리’, 세 곡 가운데 두 번째 자리
OL-921에서 홍이주의 세 곡은 ‘고향 떠난 사나이’, ‘당신과 나는 천리’, ‘지금도 가고싶어’ 순서로 배치돼 있다. 원반 수록곡을 정리한 자료에서도 이 순서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당신과 나는 천리’는 음반 제목에 올라간 곡은 아니었다. 그러나 Side B 첫머리에서 홍이주의 대표곡 ‘고향 떠난 사나이’를 바로 이어받는 위치였다.
1970년대 LP는 지금처럼 한 곡씩 검색해 듣는 방식이 아니었다. Side B에 바늘을 올리면 ‘고향 떠난 사나이’가 나오고, 홈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당신과 나는 천리’, 다시 ‘지금도 가고싶어’로 넘어갔다. 세 노래는 실제 청취 순서에서도 서로 가까이 있었다.
‘천리’라는 말이 보여주는 거리
제목의 ‘천리’는 문자 그대로 정확한 거리를 계산하기 위한 표현이라기보다 두 사람 사이가 매우 멀리 떨어져 있음을 나타내는 우리말의 익숙한 표현이다.
‘당신과 나는 천리’라는 제목은 그래서 한눈에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드러낸다. 바로 앞의 ‘고향 떠난 사나이’, 바로 뒤의 ‘지금도 가고싶어’까지 제목을 함께 놓으면 홍이주가 맡은 세 곡에는 떠남과 먼 거리,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라는 정서가 연달아 나타난다.
하지만 세 작품이 처음부터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도록 제작됐다는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당시 음반의 실제 배열에서 그런 제목들이 나란히 있었다는 사실까지가 분명한 기록이다.
한 곡보다 세 곡으로 더 선명해지는 홍이주
‘당신과 나는 천리’만 따로 떼어 보면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그러나 OL-921이라는 원반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홍이주의 당시 위치가 조금 더 분명해진다.
음반 앞면에서는 이수미가 세 곡을 연속으로 맡았다. 뒷면에서는 홍이주가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첫 세 곡을 맡았다. 그리고 각 면의 첫 곡인 이수미 ‘부두의 이별’과 홍이주 ‘고향 떠난 사나이’를 음반의 대표 제목으로 내세웠다.
‘당신과 나는 천리’는 바로 그 구성 안에서 홍이주의 두 번째 노래였다. 따라서 후대에 별도의 히트곡 자료가 널리 전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단순한 이름 없는 수록곡으로 취급하기보다는, 홍이주가 한쪽 면의 중심 가수로 참여했던 음반 안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1971년 4월 14일의 세 노래
1971년 4월 14일로 기록된 OL-921에는 지금도 당시 음반 제작방식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러 가수가 한 장의 LP에 참여했지만 아무렇게나 노래를 섞지는 않았다.
이수미에게 Side A의 첫 세 자리를 주고 홍이주에게 Side B의 첫 세 자리를 배정했다. 두 사람의 첫 곡은 각각 음반의 대표 제목이 됐다.
홍이주의 ‘당신과 나는 천리’는 그 가운데 Side B 두 번째 자리에 남아 있다. ‘고향 떠난 사나이’에서 시작해 ‘당신과 나는 천리’를 지나 ‘지금도 가고싶어’로 이어지는 세 곡을 순서대로 살펴보면, 오래된 합동 LP에서 홍이주라는 가수가 차지했던 자리가 다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