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라면 – 공진호 –


1970년 초 성음 제작소에서 나온 한 장의 음반을 펼쳐 보면 조금 독특한 구성이 눈에 들어온다. A면 여섯 곡은 모두 이영숙의 노래인데, 음반을 뒤집으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지미로를 시작으로 공진호, 신경자, 나훈아, 김은아, 남궁까지 서로 다른 가수들이 한 곡씩 차례로 등장한다.

공진호의 ‘사나이라면’은 바로 그 B면 두 번째 자리에 놓여 있었다.

현재 확인되는 가장 이른 실물 음반 계열 자료에서 ‘사나이라면’은 성음 제작소의 SEL-1-661, 이영숙·지미로의 [잊으려 해도 / 그 여인]에 수록되어 있다. 이 음반은 오아시스 레코드를 통해 발매됐고, 수집자료에는 1970년 1월 10일 발매로 정리되어 있다. 다만 성음 제작소의 당시 일련번호 자료에는 날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남아 있어, 정확한 하루까지 확정하기보다는 1970년 1월 무렵의 음반으로 보는 편이 안전하다.

‘사나이라면’의 작사는 태랑, 작곡은 정주희로 확인된다. 편곡자는 현재 확보된 자료만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B면 두 번째 곡으로 남은 공진호의 ‘사나이라면’

SEL-1-661의 B면은 당시 여러 가수의 노래를 한데 모은 구성이다.

첫 곡은 지미로의 ‘그 여인’, 두 번째가 공진호의 ‘사나이라면’이다. 그 뒤를 신경자의 ‘하청 아가씨’, 나훈아의 ‘빗소리는 나의 마음’, 김은아의 ‘낙동강 처녀사공’, 남궁의 ‘그대 떠나고’가 잇는다.

공진호가 이 음반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한 곡뿐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음반자료에서는 ‘사나이라면’을 SEL-1-661보다 앞선 음반에서 찾지 못했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가장 이른 확인 음반은 이 SEL-1-661이다.

이는 같은 음반에 수록됐다고 해서 모든 곡을 1970년 신곡으로 묶을 수 없는 사정과도 대비된다.

이 음반의 A면에는 이미 1969년에 발표된 이영숙의 노래가 여러 곡 들어가 있고, B면 첫 곡인 지미로의 ‘그 여인’ 역시 1969년 음반에서 먼저 확인된다. 그에 비해 공진호의 ‘사나이라면’은 현재 확보된 자료 안에서는 선행 음반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만큼 이 곡을 기록할 때는 음반 전체의 발매연도와 개별 곡의 최초 발표시기를 따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잊으려 해도 / 그 여인’은 한 가수의 독집이 아니었다

이 음반은 제목만 보면 이영숙과 지미로 두 사람을 중심으로 만든 음반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수록 구성을 보면 조금 더 복합적이다.

A면 여섯 곡은 모두 이영숙의 노래다.

‘잊으려 해도’를 시작으로 ‘이 밤이 가기 전에’, ‘모란은 내 사랑’, ‘단념’, ‘가을이 오기 전에’, ‘산촌의 밤’이 이어진다.

반면 B면에서는 지미로의 ‘그 여인’ 다음부터 매 곡마다 가수가 바뀐다. 공진호, 신경자, 나훈아, 김은아, 남궁이 각각 한 곡씩 참여했다.

따라서 SEL-1-661을 이영숙의 새로운 독집 음반으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이미 발표됐던 이영숙의 기존곡과 지미로의 기존곡에,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더해 한 장으로 묶어낸 합집 또는 스플릿 성격의 음반에 가깝다.

이 점은 ‘사나이라면’의 위치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

공진호의 노래가 독립적인 공진호 음반에서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수의 노래가 함께 배치된 B면 속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 가수의 정규앨범을 중심으로 노래의 역사를 따라가는 방식과는 다른 음반 제작 풍경이 이 한 장에 남아 있다.

앞서 발표된 노래와 새로 더해진 노래가 한 장에 섞였다

SEL-1-661의 성격은 각 곡의 선행 음반을 확인하면 더욱 뚜렷해진다.

이영숙의 ‘단념’과 ‘산촌의 밤’은 이미 1969년 중반의 SEL-1-605에서 확인된다. ‘가을이 오기 전에’도 1969년 중반 음반에서 앞서 등장하며, ‘모란은 내 사랑’은 1969년 12월의 SEL-1-655에 이미 수록되어 있었다.

지미로의 ‘그 여인’도 마찬가지다. SEL-1-661에서는 B면 첫 곡이지만, 약 다섯 달 전인 1969년 8월 5일로 정리된 SEL-1-634 [생각을 말자 / 울지도 않겠어요]에서 먼저 확인된다.

따라서 1970년 초에 나온 SEL-1-661은 열두 곡을 모두 새로 녹음해 처음 공개한 음반이라기보다는, 앞선 음반의 곡과 당시 새롭게 확인되는 곡들을 함께 엮은 음반으로 보는 편이 자료에 더 잘 맞는다.

그 가운데 ‘사나이라면’은 ‘하청 아가씨’, ‘빗소리는 나의 마음’, ‘낙동강 처녀사공’, ‘이 밤이 가기 전에’, ‘잊으려 해도’와 함께 현재까지 SEL-1-661이 가장 이른 실물 음반 계열 자료로 확인되는 곡에 속한다.

다만 “현재보다 앞선 음반을 찾지 못했다”는 것과 “이 음반이 틀림없이 최초 발표 음반이다”라는 말은 같지 않다. 지금 남아 있는 자료를 기준으로 가장 앞선 확인 지점을 SEL-1-661로 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태랑이 쓰고 정주희가 만든 노래

‘사나이라면’에서 현재 비교적 분명하게 확인되는 개별 곡 정보는 작사와 작곡이다.

태랑이 노랫말을 썼고 정주희가 곡을 만들었다.

B면 수록곡 가운데서도 작사·작곡 정보가 명확하게 확인되는 곡은 제한적이다. 나훈아의 ‘빗소리는 나의 마음’이 심형섭 작사·작곡으로 확인되고, 김은아의 ‘낙동강 처녀사공’은 후대 자료에서 김운하 작사·하기송 작곡으로 연결된다.

공진호의 ‘사나이라면’ 역시 태랑과 정주희라는 이름이 음반자료에 남아 있다는 점에서 곡의 제작자를 추적할 수 있다.

아쉽게도 이번에 확보된 자료에서는 편곡자를 확인할 수 없었다. 녹음 당시의 연주진이나 녹음실, 곡을 공진호가 부르게 된 과정, 제작자가 이 곡을 B면 두 번째에 배치한 이유를 설명하는 관계자 증언도 찾지 못했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빈자리에 채우기보다, 현재 남아 있는 기록만을 따라가는 것이 이 곡에는 더 어울린다.

제목만으로 노래의 사연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라면’이라는 제목은 당시의 남성상이나 사랑, 의리, 결심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가사 전문을 확보하지 못했다.

따라서 제목만 보고 노래의 화자나 상대, 사건을 추정하기는 어렵다.

무엇을 참아야 하는 사나이인지, 사랑 앞의 사나이인지, 인생의 결의를 노래한 것인지도 현재 자료만으로는 단정할 수 없다.

오래된 가요를 다룰 때 제목에서 이야기를 확장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지만, ‘사나이라면’은 오히려 그 반대가 필요한 곡이다. 확인된 가사가 없다면 노랫말의 의미 역시 다음 자료가 발견될 때까지 비워 두는 편이 정확하다.

같은 음반에서 나훈아와 이영숙도 만난다

이 음반이 흥미로운 또 하나의 이유는 한 장 안에서 서로 다른 경력의 가수들이 만난다는 점이다.

A면을 채운 이영숙은 이미 1968년 ‘아카시아의 이별’로 데뷔했고, 1969년에는 ‘그림자’, ‘가을이 오기 전에’ 등을 발표한 뒤였다. 성음 제작소의 1969년 카탈로그에서도 SEL-1-587, 605, 610, 611, 624, 630, 636, 653, 655 등 여러 음반에서 이름이 확인될 만큼 음반 활동이 이어지고 있었다.

B면 네 번째에는 나훈아의 ‘빗소리는 나의 마음’이 들어 있다.

나훈아 역시 SEL-1-661 전후로 SEL-1-649 ‘행복을 비는 마음’, SEL-1-650 스테레오 힛트앨범 제2집, SEL-1-666 ‘두 어머니의 비밀’ 등이 잇달아 확인된다. ‘빗소리는 나의 마음’은 그런 초기의 활발한 음반 활동 사이에 놓인 곡이었다.

그 사이 B면 두 번째에 공진호의 ‘사나이라면’이 자리한다.

이영숙이나 나훈아처럼 이후 활동이 비교적 많이 정리된 가수와 달리 공진호에 대해서는 이번 조사에서 별도의 동시대 활동기록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SEL-1-661에 새겨진 가수명과 곡명이 공진호의 1970년 무렵 활동을 확인하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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