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이별 – 배호 –
‘조용한 이별’과 이어서 들으면
LP에서는 ‘조용한 이별’이 끝난 직후 ‘이 순간이 지나면’이 나온다.
앞선 노래에서 화자는 눈물과 한숨을 거두고 상대를 조용히 보내려고 한다. 다음 노래에서는 마지막으로 잡은 손을 놓으면 두 사람이 서로 남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두 작품이 하나의 연속 이야기로 기획됐다고 확인되는 자료는 없다. 그러나 실제 음반에서 이 순서로 배치됐기 때문에 LP를 처음부터 들었던 청자에게는 서로 다른 두 이별 장면이 연달아 이어졌다.
배호의 목소리로 남은 짧은 이별의 순간
배호의 대표곡에는 장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 많다.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공원’, ‘비 내리는 경부선’처럼 실제 장소나 이동의 이미지가 제목부터 선명하다.
‘이 순간이 지나면’은 조금 다르다. 특정 장소보다 시간에 집중한다. 바로 지금, 마지막으로 손을 잡고 있는 순간이다.
배호의 ‘이 순간이 지나면’은 그 짧은 시간을 1971년의 음반에 붙잡아 두었다. 몇 분 뒤에는 서로 다른 길을 가야 하지만 아직은 손을 잡고 있는 두 사람. 이 노래가 끝나면 LP에서는 ‘무엇하러 왔을까’가 이어지고, 그렇게 배호가 맡은 한쪽 면도 끝을 향해 간다.
배호의 ‘조용한 이별’은 1971년 5월 20일 지구레코드 JLS-120479 ‘배상태 작곡집 – 울고 싶어 / 새벽 정거장’의 Side A 세 번째 곡이다. 박상희가 작사하고 배상태가 작곡했다. 눈물도 한숨도 거두고 사랑했던 사람을 말없이 보내겠다는 노래로, 격한 원망보다 상처를 안으로 삼키는 이별을 배호의 목소리에 담았다.
배호 ‘조용한 이별’, 울지 않고 보내려는 사람
1971년 JLS-120479 원반자료에는 ‘조용한 이별’을 박상희 작사·배상태 작곡으로 기록하고 있다.
노래 속 화자는 이별 앞에서 눈물을 거두려고 한다. 사랑했던 마음은 상처를 입었고 가슴은 아프지만 상대를 붙잡거나 원망하기보다 조용히 보내기로 한다.
두 번째 흐름에서는 눈물 대신 한숨을 거둔다. 슬픔이 사라져서가 아니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이별의 상처가 남아 있지만 마지막 순간만큼은 말없이 견디려 한다.
벅스의 ‘조용한 이별’에서도 이런 노랫말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배호의 절제된 이별가
배호의 목소리는 강한 호소력으로 기억되지만 ‘조용한 이별’의 노랫말 자체는 오히려 절제를 택한다.
울고 싶어도 눈물을 거두고, 한숨이 나와도 삼킨다. 상처가 아프다는 사실은 숨기지 않지만 떠나는 사람에게 마지막 감정을 쏟아내지도 않는다.
같은 음반 첫 곡의 제목이 ‘울고 싶어’라는 사실과 비교하면 대비가 더욱 선명하다. 첫 곡에서는 소리 내어 울고 싶은 마음을 노래하고 세 번째 곡에서는 눈물을 거두며 조용히 헤어진다.
배상태와 배호가 만든 또 하나의 이별
배상태는 ‘돌아가는 삼각지’와 ‘안개 낀 장충단공원’을 통해 배호의 전성기와 깊게 연결된 작곡가였다.
JLS-120479에서는 그 관계를 ‘배상태 작곡집’이라는 이름으로 전면에 드러냈다. 배호에게 Side A 전체를 맡기고 이미자에게 Side B 전체를 맡긴 구성이다.
‘조용한 이별’은 그 가운데 세 번째였다. ‘울고 싶어’, ‘비 내리는 경부선’을 지나 이 곡이 나오고, 이어 ‘이 순간이 지나면’, ‘무엇하러 왔을까’가 흘러나왔다.
후대 선집에서도 계속 불린 노래
‘조용한 이별’은 배호 사후에도 여러 선집에 반복해서 수록됐다. 2001년 ‘불멸의 가수 배호 전곡’에서도 ‘0시의 이별’ 다음에 ‘조용한 이별’이 들어 있다.
후대의 CD나 디지털 앨범은 이 작품을 다시 만나는 통로이지만 최초 음반의 시점과는 구별해야 한다. 이 노래의 1971년 자리는 배상태 작곡집 JLS-120479의 Side A 세 번째다.
배호의 ‘조용한 이별’은 제목 그대로 큰 소리로 붙잡지 않는 노래다. 눈물과 한숨을 거두고 사랑했던 사람을 보내면서도 가슴의 상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절제된 이별을 배호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받아냈고, 1971년 5월의 한 장의 LP에 남겼다.
이미자의 ‘새벽 정거장’은 1971년 5월 20일 지구레코드 JLS-120479 ‘배상태 작곡집 – 울고 싶어 / 새벽 정거장’의 Side B 첫 번째 곡이자 배호의 ‘울고 싶어’와 함께 음반을 대표한 작품이다. 안개가 짙게 깔린 새벽 정거장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 하는 여인의 마음을 노래한다. 따라가고 싶지만 갈 수 없고,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는 이별이다.
지구레코드 음반번호 자료는 JLS-120479를 ‘배상태 작곡집 [울고싶어 / 새벽 정거장]’으로 기록하고 발매일을 1971년 5월 20일로 정리한다. 벅스 디지털 복원판에서도 ‘새벽 정거장’은 이미자가 부른 여섯 번째 트랙, 즉 LP로는 Side B의 첫 곡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