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푸른잔디 – 이현 –
이현 ‘고향의 푸른잔디’, 미국 컨트리 명곡에서 출발하다
‘Green, Green Grass of Home’은 컬리 풋먼이 만든 컨트리 곡이다. 여러 가수가 불렀지만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판본은 1966년 톰 존스의 녹음이다.
원곡은 처음 들으면 따뜻한 귀향 노래처럼 흘러간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와 연인을 만나고 옛집과 나무, 푸른 잔디를 다시 바라본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장면이 뒤집힌다. 고향에 돌아온 것은 현실이 아니라 꿈이었다. 화자는 회색 벽에 둘러싸인 곳에서 깨어나고, 간수와 성직자가 곁에 있다. 마지막에는 고향의 푸른 잔디 아래 묻히게 될 자신의 운명을 바라본다.
이 때문에 원곡은 단순한 향수의 노래가 아니라 죽음을 앞둔 사람이 마지막으로 고향을 꿈꾸는 이야기로 알려졌다.
한국어와 영어가 함께 등장하는 이현의 판본
이현이 부른 1971년 판본은 특히 흥미롭다. 이현 ‘고향의 푸른잔디’ 음원자료에 남아 있는 가사를 보면 처음에는 한국어로 고향을 그린다.
꿈속에서 푸른 고향을 떠올리고, 지나간 시절과 친구들을 그리워한다. 그런데 중간부터 원곡의 영어 가사가 그대로 등장한다. 오래된 집과 어린 시절 놀던 나무, 사랑하는 메리를 떠올리다가 꿈에서 깨어나는 원곡의 중요한 대목이 영어로 이어진다.
마지막에는 다시 한국어로 돌아와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고향의 푸른 잔디를 부른다.
즉 이현의 판본은 원곡의 선율만 가져와 전혀 다른 한국어 가사를 붙인 단순한 번안과는 조금 다르다. 한국어로 만든 고향의 정서와 원곡 영어 가사를 한 곡 안에서 함께 들려주는 형태가 확인된다.
조영남의 ‘고향의 푸른 잔디’와도 구별해야 한다
한국에서 ‘고향의 푸른 잔디’를 이야기하면 조영남의 노래가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조영남 역시 ‘Green, Green Grass of Home’을 번안해 불렀고, 후대 방송에서도 그의 대표적인 번안 레퍼토리로 소개됐다.
벅스의 조영남 ‘고향의 푸른 잔디’를 보면 부모형제와 어린 시절 친구, 물레방아, 종달새, 어머니의 자장가 등을 떠올리는 한국어 가사가 중심이다.
반면 이현의 1971년 판본에는 원곡의 영어 대목이 상당 부분 그대로 들어간다. 제목이 같고 원곡도 같지만 두 가수의 한국어 판본을 동일한 녹음이나 동일한 가사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내 사랑 지금 어디’와 같은 시기의 이현
이현은 이 무렵 박춘석과 여러 작품을 함께했다. 앞선 박춘석 작곡집에서는 ‘내 사랑 지금 어디’, ‘첫사랑의 월츠’ 등을 불렀고, 1971년 JLS-120464에서는 ‘고향의 푸른잔디’와 또 다른 이별가를 맡았다.
JLS-120464의 Side A에서는 강정화의 ‘안개 낀 고속도로’, ‘슬픈 꽃잎 질 때’가 끝난 뒤 이현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고향의 푸른잔디’가 먼저 나오고 다음 곡으로 ‘흐르는 눈물’이 이어진다.
이현의 ‘고향의 푸른잔디’는 1971년 한국 가요음반 속에 들어온 미국 컨트리송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고향을 꿈꾸는 한국어 노랫말 사이로 원곡의 영어 가사가 흘러나오고, 마지막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의 잔디를 바라본다. 박춘석 작곡집이라는 이름 아래 한국 창작가요와 서구 번안곡이 한 장의 LP에 자연스럽게 공존했던 시절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현의 ‘흐르는 눈물’은 1971년 지구레코드 JLS-120464 ‘박춘석 작·편곡집 – 안개 낀 고속도로 / 첫정’에서 ‘고향의 푸른잔디’와 함께 이현이 맡은 작품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떠난 뒤 잊으려 해도 잊지 못하고,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서 울고 있는지를 되묻는 남자의 이별가다.
1971년 JLS-120464 원반자료에서는 ‘흐르는 눈물’을 이현의 노래로 기록하고 있다. 실물 LP의 Side 구성에서는 ‘고향의 푸른잔디’에 이어 이현이 맡은 두 번째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