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의 이야기 – 박건 –

박건 ‘빗속의 이야기’, OL-893의 Side B를 열다

OL-893의 Side A는 조미미의 ‘갯마을 처녀’로 시작한다. 이어 조미미의 ‘여인의 길’, 이석의 ‘이대로 돌이 되어’, 이수미의 ‘무정한 배’, ‘그리움은 별빛따라’가 들어갔다.

음반을 뒤집으면 가장 먼저 나오는 노래가 박건의 ‘빗속의 이야기’다. 그 다음이 역시 박건의 ‘울면서 떠나지 말아요’이며, 뒤에는 오영아의 ‘사랑을 가르쳐 주세요’, ‘옛날처럼 말해주오’, 나훈아의 ‘누가 울려’가 이어진다.

따라서 ‘빗속의 이야기’는 여러 가수의 노래 가운데 단순히 한 곡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Side B 첫 곡이자 음반 제목에 올라간 대표곡이었다.

정진성의 이름과 함께 남은 ‘빗속의 이야기’

‘빗속의 이야기’와 연결해서 살펴볼 인물은 작곡가 정진성이다. 정진성은 1960~70년대 여러 가수에게 작품을 준 작곡가로, 박건과도 인연이 있었다.

박건의 초기 활동을 정리한 박건·배성 관련 가요자료는 정진성을 ‘갯마을 처녀’, ‘빗속의 이야기’ 등을 작곡한 인물로 소개하고 있다. 같은 자료는 박건을 1941년 전남 함평 출생으로 정리하고, 1966년 ‘장미엔 가시가 있다’로 데뷔해 ‘두 글자’, ‘청포도 고향’, ‘사랑은 계절따라’ 등을 불렀다고 기록한다.

정진성의 작품집에서도 ‘빗속의 이야기’라는 제목은 반복해서 확인된다. 벅스의 ‘정진성 작곡집 제10집’ 복원자료에는 같은 제목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다만 복원자료에는 가수가 어윤성으로 표시되는 등 서로 다른 가창자 자료가 존재하므로, 박건의 OL-893 음원과 다른 수록판을 무조건 동일 녹음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박건이 한창 활동하던 1971년

‘빗속의 이야기’가 발표된 1971년은 박건의 가수 경력에서도 중요한 시기였다. 박건은 이미 1960년대 중반부터 활동하고 있었고 ‘두 글자’, ‘청포도 고향’ 등으로 이름을 알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1971년에는 김희갑이 만든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을 불렀다. 이 작품은 시간이 흐르면서 박건을 대표하는 노래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그 때문에 후대에는 박건의 1971년을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을 중심으로 기억하기 쉽다. 하지만 그해 봄의 실제 오아시스 음반을 따라가면 그보다 앞선 자리에 ‘빗속의 이야기’가 있었다.

OL-893은 4월 2일 음반으로 기록돼 있고, ‘빗속의 이야기’는 Side B 첫머리에 배치됐다. 1971년 박건의 활동을 대표곡 한두 곡만으로 보지 않을 때 다시 나타나는 작품이다.

여러 음반으로 다시 유통된 노래

‘빗속의 이야기’는 OL-893에만 남아 있지 않다. 후대에 복원된 여러 오아시스 합동음반에서도 박건의 이름으로 다시 확인된다.

‘비내리는 서울역 / 여인의 길’ 디지털 복원판에는 송환주, 조미미, 펄시스터즈, 나훈아, 정혜선, 배성, 비퀸스 등의 노래와 함께 박건의 ‘빗속의 이야기’가 수록돼 있다.

또 ‘이별의 영등포 / 도련님’ 복원 음반에서도 나영희, 한진성, 이수미 등의 노래와 함께 박건의 ‘빗속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한 번 취입한 노래를 여러 합동 LP와 선집에 다시 넣던 당시 음반 유통방식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별도의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각각을 새로운 녹음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수록 음반이 달라졌다는 사실과 녹음 자체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구별해서 보는 편이 정확하다.

비와 이별을 품은 박건의 1971년 노래

‘빗속의 이야기’는 제목부터 비가 내리는 장면을 전면에 놓는다. 1960~70년대 가요에서 비는 떠난 사람과 이별의 기억을 불러오는 소재로 자주 사용됐고, 박건의 이 작품 역시 그 계열에 놓여 있다.

다만 현재 확인되는 음반자료만으로 세부적인 노랫말을 임의로 재구성할 필요는 없다. 이 곡에서 더 확실하게 남아 있는 것은 1971년 4월 OL-893이라는 원반과 Side B 첫 번째라는 자리, 그리고 박건의 이름이다.

박건의 ‘빗속의 이야기’는 후대에 그의 가장 유명한 대표곡으로 남은 작품은 아니지만, 1971년 봄에는 조미미의 ‘갯마을 처녀’와 한 장의 LP 양면을 나누었던 대표곡이었다. 오래된 음반을 다시 펼쳐볼 때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만으로는 다 보이지 않는 젊은 박건의 시간이 이 노래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박건의 ‘울면서 떠나지 말아요’는 1971년 오아시스레코드 OL-893에서 ‘빗속의 이야기’ 바로 다음에 놓인 노래다. 같은 가수가 연속으로 부른 두 작품이 Side B의 첫머리를 채웠으며, ‘빗속의 이야기’가 면을 여는 대표곡이었다면 ‘울면서 떠나지 말아요’는 그 뒤를 잇는 두 번째 박건 수록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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