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화 – 문주란 –
‘봉선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홍난파는 1920년 ‘애수’라는 제목의 기악곡을 작곡했고, 1926년 김형준이 가사를 붙이면서 ‘봉선화’가 완성됐다. 작사는 김형준, 작곡은 홍난파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봉선화’ 보기
‘봉선화’와 ‘봉숭아’라는 두 제목이 함께 쓰이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광복 뒤 음악 교과서에 실리면서 순우리말 표현인 ‘봉숭아’가 사용됐고, 오늘날에는 두 이름이 함께 통용된다.
꽃의 생애에 겹쳐 놓은 시대의 상처
가사는 여름에 피어난 봉선화가 가을바람을 맞고 시들었다가, 겨울을 견딘 뒤 다시 봄에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꽃 한 송이의 생애를 통해 쇠잔함과 회복을 노래하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현실과 겹쳐 받아들여진 작품이기도 하다.
1970년 문주란의 목소리로 다시 녹음
문주란은 이 오래된 가곡을 배호와 함께 만든 세계가곡집에 다시 녹음했다. 후대 복원 음원에서도 문주란의 ‘봉선화’가 JLS-120411 계열 음원으로 남아 있다. 문주란·배호 세계가곡집 보기
이 음반에서 ‘봉선화’ 뒤에는 ‘로렐라이’, ‘바위고개’, ‘그 집앞’, ‘이별’이 이어진다. 한국 초기 가곡과 독일 노래, 1930년대 한국 가곡, 전후 가곡을 한 가수의 목소리로 이어 놓은 구성이었다.
문주란의 가요 목록 속에서 다른 자리
문주란의 대표 음반을 따라가면 박춘석과 함께한 대중가요가 중심을 이룬다. 그러나 1970년의 ‘봉선화’는 그런 계보와 조금 다르다. 문주란이 이미 존재하던 한국 가곡의 정전을 대중음반으로 다시 부른 기록이다.
따라서 이 곡의 최초 발표일은 1970년이 아니다. 1970년은 문주란 버전이 지구레코드 LP에 수록된 시점이며, 작품 자체의 출발점은 192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문주란의 ‘이별’은 1970년 JLS-120411 《배호·문주란의 세계가곡집》에 실린 곡으로, 현대 복원 음원에서는 ‘이별의 노래’라는 원래 제목으로 정리돼 있다. 박목월의 시에 김성태가 곡을 붙인 전후 한국 가곡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