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손수건 – 트윈 폴리오 –

트윈 폴리오의 ‘하얀 손수건’​은 흔히 1970년 『튄·폴리오 리사이틀』의 대표곡으로 기억되지만, 실제 음반 기록은 그보다 앞선다.

1969년 6월 지구레코드에서 나온 김인배 작·편곡집 JL-120329에는 펄시스터즈의 ‘I Love You’와 함께 트윈 폴리오의 ‘하얀 손수건’이 Side A 두 번째 곡으로 실려 있다. 같은 음반에서 트윈 폴리오는 ‘Blowing In The Wind’, ‘Lost Love’, ‘To Know You Is To Love You’, ‘Crying In The Rain’ 등도 불렀다. 따라서 1970년 『튄·폴리오 리사이틀』은 ‘하얀 손수건’의 최초 수록 음반이 아니라, 이미 알려져 있던 노래를 다시 담은 독집 성격의 음반이었다.

그리고 ‘하얀 손수건’은 트윈 폴리오의 시작뿐 아니라 마지막 장면에도 등장했다.

1969년 12월 21~22일 서울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열린 공연에서 트윈 폴리오는 활동 중단을 알렸다. 당시 공연에서 ‘하얀 손수건’을 부르자 많은 10대 여성 팬들이 함께 노래하며 울먹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세시봉에서 시작한 송창식과 윤형주

트윈 폴리오는 1967년 말 무교동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송창식·윤형주·이익균이 만든 세시봉 트리오에서 출발했다.

이익균이 군에 입대한 뒤 1968년 초 송창식과 윤형주 두 사람만 남았고, 이때부터 ‘트윈 폴리오’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서울의 음악감상실과 생음악 무대,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출연하며 젊은 층에서 빠르게 인기를 얻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들이 외국 포크와 팝을 우리말로 옮겨 부르면서 기타 연주와 두 사람의 화음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노래 방식을 보여줬고, ‘하얀 손수건’과 ‘웨딩 케잌’ 등이 도시의 대학생과 고등학생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고 정리하고 있다.

1968년 12월에는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첫 리사이틀을 성공적으로 열었다. 그러나 불과 1년 뒤 같은 장소의 공연은 이들의 고별 무대가 됐다.

‘하얀 손수건’은 어디서 온 노래인가

‘하얀 손수건’은 한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멜로디가 아니다.

원곡은 그리스 가수 나나 무스쿠리(Nana Mouskouri)​가 부른 ‘Me T’Aspro Mou Mantili’ 계열의 곡이다. 원제 역시 ‘나의 하얀 손수건’이라는 뜻을 지닌다.

트윈 폴리오 버전의 한국어 노랫말은 조용호 작사, 외국곡​으로 현재 멜론에 등록돼 있으며, ManiaDB와 일부 원반 자료에서는 이름 표기가 조금씩 달리 전해진다. 멜론의 현재 저작자 정보는 조용호를 작사자로 명시한다.

1970년 『튄·폴리오 리사이틀』에서도 이 곡은 그대로 다시 수록됐다.

가사에 담긴 하얀 손수건의 이야기

노래의 시작은 한 통의 편지다.

사랑했던 사람이 헤어지자는 편지를 보내고 그 안에 하얀 손수건을 함께 넣어 보낸다.

그 손수건은 처음 보는 물건이 아니다. 과거 고향을 떠날 때 언덕에서 누군가 눈물을 흘리며 흔들어 주던 바로 그 손수건이다.

시간이 지나 예전의 눈물 자국은 사라졌지만 이제는 화자 자신의 눈물이 다시 손수건을 적신다. 현재 멜론에도 이런 이야기 구조의 가사가 그대로 남아 있다.

노랫말은 길지 않다.

그러나 떠나는 순간의 손수건 → 헤어짐의 편지 속 손수건 → 다시 그 위에 떨어지는 눈물이라는 시간의 연결이 선명하다.

비탄을 크게 외치는 방식이 아니라 작은 물건 하나에 지난 시간을 겹쳐놓는다. 트윈 폴리오의 담담한 화음과 잘 맞는 노랫말이다.

1970년 『튄·폴리오 리사이틀』에 다시 실리다

트윈 폴리오는 1969년 12월 해체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해체 뒤인 1970년 1월 독집 『튄·폴리오 리사이틀』이 발표됐다고 기록한다. 음반자료에는 초반을 지구레코드 JCS-0372, 1970년 1월 5일​로 정리한 기록이 있으며, 이후 1973년·1976년·1980년 JLS-120372 번호로 계속 재발매됐다.

초반의 12곡은 다음과 같다.

Side A에는 ‘축제의 노래’, ‘행복한 아침’, ‘에델바이스’, ‘낙엽’, ‘슬픈 운명’, ‘회상의 노래’.

Side B에는 ‘고별’, ‘웨딩 케익’, ‘하얀 손수건’, ‘더욱 사랑합니다’, ‘사랑의 기쁨’, ‘내 사랑 어디로’가 들어갔다.

‘하얀 손수건’은 Side B 세 번째였다.

해체 뒤에 나온 한 장의 독집

조금 독특한 점은 이 음반이 팀의 활동이 끝난 뒤에 나왔다는 사실이다.

IZM 역시 많은 팬이 가지고 있는 1970년 트윈 폴리오 음반은 해체 뒤 팬들의 요청으로 제작된 음반이라고 설명한다. 수록곡에는 ‘하얀 손수건’, ‘웨딩 케익’, ‘고별’, ‘슬픈 운명’, ‘행복한 아침’ 등 이들이 무대에서 부르던 외국곡의 번안곡들이 대거 들어갔다.

창작곡을 중심으로 한 오늘날의 정규앨범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트윈 폴리오가 세시봉과 방송, 리사이틀에서 불렀던 레퍼토리를 한 장에 보존한 활동기의 기록집에 더 가깝다.

‘하얀 손수건’이 고별 무대에서 가진 자리

1969년 12월의 드라마센터 공연은 원래부터 고별공연으로 준비된 것이 아니었다.

윤형주가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활동 중단을 선택하면서 연말 공연이 갑작스럽게 마지막 무대로 바뀌었다는 당시 상황이 후대 기사와 평론에 남아 있다.

국제신문은 ‘하얀 손수건’을 부르기 시작하자 객석의 많은 10대 팬들이 울먹이며 따라 불렀다고 전한다. 공연은 찬조 가수 없이 두 사람만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약 두 시간 진행됐다는 기록도 있다.

노래에 원래부터 트윈 폴리오의 해체 이야기가 담겼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헤어짐의 편지와 손수건을 노래한 곡이 실제 두 사람의 마지막 무대에서도 불렸다는 사실 때문에 ‘하얀 손수건’에는 시간이 흐른 뒤 또 하나의 의미가 겹쳤다.

시간이 지나 다시 듣는 ‘하얀 손수건’

트윈 폴리오가 함께 활동한 기간은 채 2년이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하얀 손수건’과 ‘웨딩 케익’ 같은 노래는 대학생과 젊은 청중에게 널리 퍼졌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두 사람이 보여준 기타 반주와 보컬 하모니를 한국 포크송의 한 전범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하얀 손수건’은 그 역사를 가장 압축해서 보여주는 곡 가운데 하나다.

1969년 6월 작은 작곡집 한쪽에서 처음 음반에 남았고, 같은 해 12월에는 고별 공연장에서 팬들과 함께 불렸으며, 두 사람이 헤어진 뒤인 1970년 1월 다시 『튄·폴리오 리사이틀』에 담겼다.

노래 속에는 헤어짐을 알리는 편지와 한 장의 손수건만 있다.

그러나 트윈 폴리오의 실제 시간까지 겹쳐놓고 보면, 그 하얀 손수건은 한국 포크 음악의 첫 세대가 남긴 작은 표식처럼 지금까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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