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그 목소리 – 조영남 –

조영남의 ‘잊지 못할 그 목소리’는 1970년 지구레코드에서 나온 김인배 작곡집 ‘추억은 못견디게’의 Side 1 마지막에 실린 노래다. 이미자의 ‘추억은 못견디게’, ‘내사랑 한번가고’, ‘못잊을 내사랑’, ‘그사람은 떠나가고’가 연달아 흐른 뒤 다섯 번째 자리에서 조영남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실물 LP 자료에도 이 순서가 그대로 남아 있다. LP25 실물 음반 자료

그런데 이 곡에는 앞서 살펴본 같은 음반의 다른 노래들과 다른 이야기가 하나 있다.

조영남이 처음 부른 노래가 아니었다.

적어도 1965년 무렵 이미 가수 조애희의 음반에 ‘잊지못할 그 목소리’가 들어 있었고, 조영남은 가수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뒤 이 노래를 다시 불렀다. 1970년 음반의 단순한 신곡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잊지 못할 그 목소리’가 조영남의 음반에 들어오기까지

‘잊지 못할 그 목소리’가 확인되는 앞선 기록은 조애희에게서 찾을 수 있다.

오아시스레코드의 조애희 음반 ‘나는 보았지 / 홀로가는 사람’ 수록목록을 보면 Side 2에 ‘홀로 가는 사람’, ‘꽃피는 시절’, ‘귀여운 행진’, ‘당신이 찾으시면’에 이어 다섯 번째 곡으로 ‘잊지못할 그 목소리’가 실려 있다. 현재 벅스에도 이 조애희 음원이 별도로 남아 있다. 벅스 조애희 음반 정보

또 다른 음반 자료에서는 이 계열의 조애희·박형준 음반을 1965년 오아시스레코드 작품으로 소개하면서 같은 수록곡을 확인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확인되는 자료만 놓고 보면 조영남의 1970년 녹음보다 앞서 조애희가 먼저 발표한 곡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조영남의 ‘잊지 못할 그 목소리’는 원곡의 최초 발표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김인배 계열의 작품을 새로운 가수가 다시 부른 경우에 해당한다.

조영남 버전은 1970년 김인배 작곡집에 실렸다

조영남 버전의 최초 수록 음반으로 확인되는 것은 지구레코드의 김인배 작곡집 ‘추억은 못견디게’다.

지구레코드 음반번호를 정리한 자료에서는 이 음반을 JLS-120386, 제작일을 1970년 1월 1일로 기록한다. 실물 음반 판매자료에서도 Side 1의 마지막 곡으로 ‘잊지못할 그 목소리(조영남)’가 확인된다.

수록 순서는 다음과 같다.

Side 1은 이미자의 ‘추억은 못견디게’, ‘내사랑 한번가고’, ‘못잊을 내사랑’, ‘그사람은 떠나가고’, 그리고 조영남의 ‘잊지못할 그 목소리’로 끝난다.

Side 2에는 신지훈의 ‘빗속을 가네’, ‘그사람 별은’, ‘그대는 내마음에’, 펄시스터즈의 ‘남자가 혼자 있을때’, 샌디한의 ‘산까치’가 실렸다.

한 장의 LP에서 이미자의 네 곡이 이어진 다음 조영남이 단 한 곡만 부른 구성이다.

그래서 이 음반만 보면 조영남이 중심 가수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당시 김인배가 자신의 작품들을 여러 세대의 가수에게 나누어 부르게 한 작곡집 속에서 신인에 가까웠던 조영남의 목소리 한 곡이 끼어 있는 모습에 가깝다.

이때 조영남은 막 가수로 이름을 알리던 시기였다

1970년의 조영남은 이미자와는 전혀 다른 위치에 있었다.

조영남은 1960년대 무교동 음악감상실 세시봉 무대에서 노래하다가 1969년 번안곡 ‘딜라일라’를 들고 TBC ‘쇼쇼쇼’에 출연하면서 대중가수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그는 훗날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딜라일라’를 급히 번역해 방송 무대에서 불렀고, 그 무대를 계기로 가수가 됐다고 회고했다. 연합뉴스 조영남 인터뷰

당시 대중의 눈에 비친 조영남은 기존 트로트 가수들과는 조금 다른 인물이었다.

성악을 공부했고 팝과 번안곡을 불렀으며, 큰 성량과 독특한 무대 스타일로 빠르게 알려졌다. 1970년 1월 발행된 《선데이서울》 목차에는 벌써 ‘리사이틀 갖는 조영남’이라는 기사가 등장한다. 이제 막 데뷔 무대를 치른 가수가 독자적인 공연 기사로 다뤄질 만큼 이름이 빠르게 퍼지고 있던 시기였다.

‘잊지 못할 그 목소리’가 음반에 실린 것도 바로 그 무렵이다.

그러나 1970년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조영남의 1970년을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사건도 있다.

그해 4월 서울 와우아파트 붕괴사고가 일어난 뒤 조영남은 김시스터즈 귀국공연 무대에서 ‘신고산타령’ 가사를 사고 내용에 맞춰 즉흥적으로 바꾸어 불렀다. 그는 훗날 이 일로 문제가 생겨 결국 군에 입대하게 됐다고 여러 차례 회고했다.

따라서 ‘잊지 못할 그 목소리’가 실린 1970년은 조영남에게 데뷔 직후 대중적 관심이 급격히 커지는 동시에 군 복무로 활동의 흐름이 바뀌던 해이기도 했다.

이런 기록은 노래 자체의 사연은 아니지만, 이 LP에 젊은 조영남의 노래가 한 곡 들어가 있던 시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된다.

김인배의 노래들을 다시 부른 조영남

‘잊지 못할 그 목소리’가 우연히 한 번만 김인배의 음반에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현재 벅스에는 ‘김인배 작곡집 – 밤하늘의 Blues’라는 조영남 음원집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 ‘잊지못할 그 목소리’와 함께 ‘무덥고 긴 여름이 가면’, ‘사랑해 봤으면’, ‘보슬비 오는 거리’, ‘밤의 정거장’ 등 김인배의 과거 작품들이 함께 실려 있다. 벅스 김인배 작곡집 – 밤하늘의 Blues

이 가운데 ‘무덥고 긴 여름이 가면’ 역시 조영남보다 앞서 1965년 박형준이 부른 음반이 확인된다.

즉 조영남과 김인배의 작업에서는 당시의 신곡뿐 아니라 김인배가 앞선 시기에 다른 가수에게 주었던 작품을 조영남의 목소리로 다시 녹음하는 흐름도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잊지 못할 그 목소리’는 그 가운데 하나다.

‘잊지 못할 그 목소리’에 담긴 이야기

이 노래의 제목이 가리키는 대상은 이미 떠나간 사람이다.

화자는 지나간 사람의 모습을 기억하고, 무엇보다 그 사람의 목소리를 잊지 못한다.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서 기억 속 목소리만 다시 들려오는 구조다.

조영남의 다른 음원 ‘오솔길’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타난다. 그 곡 역시 쓸쓸한 길에 홀로 서서 떠나간 사람의 모습과 목소리를 떠올리는 내용으로 남아 있다.

다만 공개된 자료만으로 ‘잊지 못할 그 목소리’의 정확한 가사 전문을 원반과 대조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누구를 두고 쓴 노래인지’와 같은 구체적인 사연은 확인되지 않은 영역으로 남겨두는 편이 맞다.

같은 음반 속에서는 조금 다른 위치에 있던 노래

‘추억은 못견디게’ 음반의 앞면은 사실상 이미자의 영역이다.

이미자가 네 곡을 연속해 부른 다음 마지막에 조영남이 등장한다. 반면 뒷면에는 신지훈 세 곡과 펄시스터즈, 샌디한이 자리한다.

그래서 조영남의 ‘잊지 못할 그 목소리’ 한 곡만 놓고 보면 작은 수록곡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초 기록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960년대 중반 조애희가 먼저 불렀던 노래가 1970년, 막 ‘딜라일라’로 이름을 알린 조영남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음반에 들어왔다.

한 작곡가의 노래가 다른 시대, 다른 가수의 목소리를 거쳐 살아남은 셈이다.

시간이 지나 다시 듣는 ‘잊지 못할 그 목소리’

조영남의 대표곡을 이야기할 때 ‘잊지 못할 그 목소리’가 먼저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딜라일라’, ‘제비’, 훗날의 ‘화개장터’ 같은 노래들에 비하면 지금은 잘 알려지지 않은 초기 녹음이다.

하지만 오래된 음반을 따라가 보면 이 노래는 조영남의 데뷔 초 모습을 보여주는 작은 단서가 된다.

1965년 무렵 조애희가 먼저 불렀고, 1970년에는 김인배 작곡집의 Side 1 마지막에서 조영남이 다시 불렀다. 그때 조영남은 막 방송무대와 리사이틀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 복무로 활동의 방향도 바뀌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히트곡은 아니었다.

대신 한 노래가 가수를 바꾸어 다시 불리고, 그 재녹음이 훗날 유명해질 가수의 가장 이른 시절에 남아 있다는 기록이 있다.

‘잊지 못할 그 목소리’라는 제목처럼, 노래 자체도 그렇게 오래된 음반 속 목소리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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