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소리 – 쉐그린 –

쉐그린 ‘침묵의 소리’, ‘The Sound of Silence’와 구별해야 한다

제목만 보면 사이먼 앤 가펑클의 유명한 ‘The Sound of Silence’를 먼저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제목이 비슷하다는 사실만으로 쉐그린의 ‘침묵의 소리’를 그 곡의 번안곡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KLS-14 음반자료에서는 ‘침묵의 소리’를 쉐그린의 별도 수록곡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 확인되는 음반정보만으로 사이먼 앤 가펑클의 작품을 원곡으로 특정할 근거는 보이지 않는다.

같은 음반의 ‘동물농장’처럼 외국곡의 뿌리가 비교적 분명하게 추적되는 경우와는 다르다. 따라서 ‘침묵의 소리’는 제목의 유사성만으로 번안곡이라는 설명을 붙이지 않는 것이 정확하다.

밤과 가로등, 초승달이 만드는 풍경

‘침묵의 소리’의 노랫말에는 밤의 이미지가 이어진다. 어둠 속 가로등과 초승달 같은 풍경이 나타나고, 화자는 고요한 밤에 자신의 마음과 마주한다.

누군가와 격렬하게 다투거나 이별하는 장면보다는 말이 사라진 뒤의 정적에 가깝다. 그래서 제목의 ‘침묵’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물리적인 상태라기보다 마음속에 남은 고요함과 외로움을 표현하는 말로 읽을 수 있다.

다만 가사에서 직접 확인되지 않는 특정 연인이나 사건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 이 노래가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밤과 침묵,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위로하는 듯한 화자의 모습이다.

‘미련’과 ‘철새는 날아가고’ 사이

KLS-14의 Side A에서 ‘침묵의 소리’는 세 번째 곡 ‘미련’과 마지막 곡 ‘철새는 날아가고’ 사이에 있다.

‘미련’에는 코스모스와 가을 하늘이 있고, ‘침묵의 소리’에는 밤과 가로등이 있으며, ‘철새는 날아가고’에는 멀어지는 철새가 있다. 서로 다른 작품이지만 자연과 풍경을 통해 마음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가까운 인상을 준다.

이런 노래들을 ‘동물농장’과 한 장의 LP에서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 KLS-14의 재미이기도 하다. 익살스러운 노래만으로 쉐그린을 기억하면 보이지 않는 서정적인 레퍼토리가 앞면에 여러 곡 놓여 있었다.

1971년 쉐그린의 넓었던 노래 세계

1971년 5월 29일 서울 YMCA 강당에서 열린 쉐그린의 첫 리사이틀 기록을 보면 ‘미련’과 ‘그리움’ 같은 신곡이 실제 무대에서도 소개됐다. 주간한국의 회고기사는 당시 약 2천 명이 공연장을 찾았고 투 에이스, 양희은, 이용복 등이 함께했다고 전한다.

이 공연기록과 KLS-14를 함께 보면 초기 쉐그린의 음악이 ‘동물농장’ 한 곡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사랑의 고백도 있었고 그리움과 미련도 있었으며, 밤의 침묵과 떠나는 철새를 노래한 작품도 있었다.

쉐그린의 ‘침묵의 소리’는 그 가운데 Side A 네 번째에 놓인 조용한 작품이다. 제목이 유명한 외국곡을 떠올리게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번안 관계를 덧붙일 필요는 없다. 1971년 KLS-14의 실제 수록순서로 돌아가면, ‘미련’이 끝난 뒤 밤의 고요가 찾아오고 그 다음에는 ‘철새는 날아가고’가 이어진다. 오래된 LP 한쪽 면에서 쉐그린은 그렇게 서로 다른 풍경을 차례로 노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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