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없었다면 – 이상열 –
이상열의 ‘이별이 없었다면’은 1970년 가을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나온 OL-816 《이별이 없었다면 / 왜 못잊는가》의 앞면 첫 곡으로 확인된다. 김영광이 작사·작곡한 이 노래에는 한 가지 특별한 기록도 남아 있다. 훗날 방송심의위원회가 정리한 해제곡 명단에서 ‘왜색’ 사유의 금지곡으로 분류된 것이다.
이상열은 이 음반이 나올 무렵 이미 ‘못잊어서 또 왔네’, ‘아마도 빗물이겠지’ 등을 발표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가던 젊은 가수였다. ‘이별이 없었다면’은 그런 시기에 발표된 또 하나의 이별 노래이지만, 후대에 남은 심의 기록 때문에 1970년대 가요 검열의 흔적까지 함께 들여다보게 하는 곡이 되었다.
‘이별이 없었다면’이 실린 오아시스 OL-816
오아시스 음반목록에는 OL-816 《이별이 없었다면 / 왜 못잊는가》가 이상열과 손진아의 음반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오아시스 번호의 흐름을 보면 OL-811 《슬픈연가 / 가지마오》, OL-812 《내가 바보였나 / 바다가 육지라면》 등을 거쳐 OL-816이 이어지고, 이후 OL-821 《하얀눈물 / 마음의 여인》이 1970년 11월에 등장한다. 오아시스 OL 음반목록 보기
실물 음반을 소개한 수집 자료에는 이 음반의 발매일이 1970년 10월 30일, 제작사가 오아시스레코드, 음반번호가 OL-816으로 정리돼 있다. 같은 자료에서 ‘이별이 없었다면’의 작사·작곡은 모두 김영광으로 적혀 있다. OL-816 ‘이별이 없었다면’ 음반자료
이 음반은 이상열의 단독 독집 형태가 아니라 여러 가수의 노래를 함께 구성한 당시 오아시스식 합집 LP였다. 앞면에는 이상열의 ‘이별이 없었다면’을 비롯해 ‘흐느끼는 첫사랑’, ‘외로움을 모르시나요’와 김상희·배성의 곡이 배치됐고, 뒷면에는 손진아의 ‘왜 못잊는가’와 ‘아 통곡’, 남미랑, 최동길, 패티김의 노래가 함께 실렸다. 따라서 이 음반을 이상열의 후대 베스트앨범이나 독집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1960년대 후반부터 빠르게 이름을 알린 이상열
이상열은 이 음반 이전부터 이미 여러 곡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었다. 2005년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그는 1967년 서울 종로의 음악학원에서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고, 17세 무렵 가요계에 데뷔했다고 회고했다. 기사에서는 ‘아마도 빗물이겠지’, ‘못잊어서 또 왔네’, ‘난이야’, ‘사랑과 우정’, ‘눈물을 가르쳐준 여인’ 등을 그의 대표적인 초기 히트곡으로 소개한다. 국민일보 이상열 인터뷰
그 가운데 ‘아마도 빗물이겠지’는 1969년 정풍송 작곡집 음반에서 확인되는 곡이다. 벅스의 곡 정보에서도 정풍송이 작사와 작곡을 맡은 것으로 정리돼 있다. ‘아마도 빗물이겠지’ 곡정보
1970년에는 ‘난이야’를 비롯한 신곡들이 이어졌고, 같은 해 가을 ‘이별이 없었다면’이 OL-816의 앞면 첫 곡으로 등장했다. 하나의 곡으로 오래 머무르기보다 여러 작곡가의 작품과 여러 합집 음반을 통해 빠르게 신곡을 내놓던 시기였음을 당시 음반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별이 없었다면’에 담긴 이야기
김영광이 쓰고 만든 가사에서 화자는 이미 끝난 이별 앞에 서 있다. 노래는 이별이라는 사건 자체보다 그 뒤에 남은 후회와 미련을 따라간다. 헤어진 사람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도 못하고, 지나간 추억 속에 머물면서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구조이다.
첫머리에서는 이별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울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역설적인 고백이 나오고, 이어 눈물과 용서, 미움도 슬픔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가 겹쳐진다. 두 번째 부분에서도 같은 구조가 반복되지만 ‘원망하지도 못할’이라는 표현이 더해지면서 감정이 미련 쪽으로 기운다.
가사의 배경에 구체적인 장소나 실제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실화나 특정 연애 사건과 연결하기보다는, 헤어진 뒤 상대를 미워할 수도 잊을 수도 없는 화자의 상태를 압축한 김영광의 이별가로 보는 것이 자료에 가장 충실하다.
1987년 해제곡 목록에 남은 ‘왜색’ 판정
이 곡의 가장 분명한 별도 기록은 방송심의 자료에 있다.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방송심의위원회 1987년 해제곡 목록에는 금지번호 464번 ‘이별이 없었다면’이 올라 있으며, 작사 김영광, 작곡 김영광, 가수 이상열, 금지사유는 ‘왜색’으로 기록돼 있다. 국가기록원 1987년 해제곡 목록
이 기록에서 중요한 것은 ‘왜색’이라는 사유가 공식 목록에 실제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다만 이 해제곡 명단 자체에는 최초 금지 판정 날짜나 어떤 선율·편곡 요소를 문제 삼았는지까지 적혀 있지 않다. 따라서 ‘1970년 발매와 동시에 금지됐다’거나 특정 음악적 대목 때문에 판정을 받았다고 확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왜색’은 당시 대중가요 심의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 금지 사유 가운데 하나였다. 같은 국가기록원 목록에는 이미자, 남일해, 김부자, 오기택 등 여러 가수의 곡이 동일한 사유로 분류돼 있다. ‘이별이 없었다면’ 역시 그 목록에 포함됐다가 1987년 해제곡으로 정리됐다는 사실까지가 현재 공공기록에서 확인되는 범위이다.
한 음반에 함께 있던 손진아와 여러 가수들
OL-816의 반대편 표제곡은 손진아의 ‘왜 못잊는가’이다. 현대 디지털 복원 음원에서도 손진아의 이 곡이 《이별이 없었다면 / 왜 못잊는가》라는 앨범명 아래 남아 있어 원반과 후대 복원 자료의 연결을 확인할 수 있다. 손진아 ‘왜 못잊는가’ 복원 음원
같은 음반에는 최동길의 ‘주차장’도 수록됐으며, 이 곡 역시 같은 복원 앨범 안에서 확인된다. 최동길 ‘주차장’ 곡정보 이런 구성은 OL-816이 특정 가수 한 명의 독집이라기보다 당대 오아시스가 여러 가수의 신곡과 기존곡을 묶어 내던 합집 LP였음을 보여준다.
후대 음원과 1970년 원반을 구분해서 볼 필요
‘이별이 없었다면’은 1991년 발매된 이상열의 《오리지날 힛송 총결산집》에도 다시 수록됐다. 벅스의 현재 음원목록에서는 이 컴필레이션의 8번 곡으로 확인된다. 이상열 ‘오리지날 힛송 총결산집’
그러나 이 1991년 음반이나 2010년대 디지털 복원판은 최초 발표 음반이 아니다. 노래의 출발점을 볼 때는 1970년 오아시스 OL-816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오래된 가요에서 후대 음원 서비스의 등록일을 원곡 발매일로 잘못 읽기 쉬운데, ‘이별이 없었다면’도 원반과 복원 음원을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는 사례다.
시간이 지나 다시 보는 ‘이별이 없었다면’
이상열의 ‘이별이 없었다면’은 김영광이 직접 작사·작곡한 1970년의 이별가이면서, 한편으로는 훗날 ‘왜색’ 사유의 금지곡으로 분류됐다가 해제된 기록을 지닌 노래다. 음악 그 자체와 행정적 심의 기록이 나란히 남아 있다는 점에서 당시 대중가요가 어떤 제도적 환경 속에서 유통됐는지도 함께 보여준다.
오늘 남아 있는 기록을 따라가면 이 노래의 자리는 비교적 분명하다. 1970년 10월 오아시스 OL-816의 앞면을 연 이상열의 노래, 김영광이 쓰고 만든 이별가, 그리고 1987년 해제곡 목록에 ‘왜색’이라는 한 단어와 함께 남은 곡이다. 그 세 가지 기록이 ‘이별이 없었다면’을 단순한 옛 노래 한 곡보다 조금 더 깊게 바라보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