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두의 이별 – 이수미 –

이수미 ‘부두의 이별’, OL-921의 첫 곡

OL-921의 실제 수록구성을 정리한 이수미 음반자료를 보면 Side A는 이수미의 ‘부두의 이별’로 시작한다. 이어 ‘당신곁을 떠납니다’, ‘밤에 우는 새’까지 이수미의 노래 세 곡이 연속으로 놓이고, 이상열의 ‘너 하나만을’, 배성의 ‘사나이 순정’이 뒤를 잇는다.

Side B로 넘어가면 홍이주가 등장한다. ‘고향 떠난 사나이’, ‘당신과 나는 천리’, ‘지금도 가고싶어’가 연속으로 배치되고, 이영숙의 ‘바람아 봄바람아’, 이채연의 ‘간다더니’가 이어진다.

따라서 이 음반은 이수미와 홍이주가 각각 한쪽 면의 앞부분을 맡는 구조였다. 그 가운데 ‘부두의 이별’과 ‘고향 떠난 사나이’가 음반의 양면을 대표하는 제목으로 선택됐다.

‘여고시절’ 직전, 트로트 가수 이수미의 시간

후대의 이수미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1972년의 ‘여고시절’이다. 그러나 OL-921이 나온 1971년 봄에는 아직 그 대표곡이 세상에 나오기 전이었다.

차트코리아의 이수미 가수자료에 따르면 이수미는 1969년 목포 KBS 노래자랑에서 5주 연속 우승했고, 이후 서울로 올라와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데뷔 초기에는 트로트 계열의 노래를 불렀으며, 1972년 ‘여고시절’이 크게 알려지면서 활동의 전환점을 맞았다.

같은 자료에는 1972년 TBC 7대 가수상과 MBC 10대 가수상, 1975년 MBC 10대 가수상과 TBC 최고 여자가수상 등의 수상기록도 정리돼 있다.

이런 경력을 거꾸로 따라가면 ‘부두의 이별’은 이미 스타가 된 뒤의 이수미가 부른 노래가 아니다. ‘여고시절’이 나오기 전, 오아시스에서 자신의 레퍼토리를 쌓아가던 초기 이수미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이다.

1971년 오아시스에서 이어지던 이수미의 취입

1971년 오아시스 음반목록에서 이수미의 이름은 OL-921 한 장에만 나타나지 않는다. 같은 시기 여러 합동음반과 작곡집에서 이수미의 노래가 계속 발견된다.

OL-893 ‘갯마을 처녀 / 빗속의 이야기’에는 ‘무정한 배’와 ‘그리움은 별빛따라’가 실렸고, OL-920은 최동길과 이수미의 ‘눈물이 보일까봐 / 여자이기에’를 대표 제목으로 내세웠다. OL-921에서는 다시 ‘부두의 이별’, ‘당신곁을 떠납니다’, ‘밤에 우는 새’ 세 곡을 맡았다.

이런 음반들을 시간순으로 놓으면 1971년은 이수미가 한두 곡만 시험적으로 녹음하던 시기가 아니라 오아시스를 통해 상당수의 노래를 계속 발표하던 시기였음을 볼 수 있다.

월견초와 이인권이 만든 ‘부두의 이별’

‘부두의 이별’의 작사자는 월견초, 작곡자는 이인권이다. 이 정보는 후대 음원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국가기록원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월견초는 본명 서정권으로 알려진 작사가로 ‘남천강 사랑’을 비롯한 여러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남겼다. 이인권은 가수이자 작곡가로 오랫동안 활동했고, 이수미가 ‘부두의 이별’을 취입하던 시기에도 여러 가수의 작품에 이름을 남겼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작품의 중심에는 부두에서의 이별이 있다. 항구와 부두, 배, 떠나는 사람과 남겨지는 사람은 오래전부터 한국 대중가요가 반복해서 다루었던 소재였다.

한국 대중가요의 항구 노래를 정리한 농촌여성신문 기사에서도 ‘이별의 인천항’, ‘잘있거라 부산항’ 등을 예로 들며 항구에서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이별이 오랫동안 대중가요의 중요한 서사였음을 설명한다.

‘부두의 이별’은 바로 그 계보가 계속 이어지던 1971년에 발표된 작품이었다.

국가기록원에 남은 ‘표절’ 판정

‘부두의 이별’에는 OL-921의 수록기록보다 더 특별한 자료가 하나 남아 있다. 방송금지 이력이다.

국가기록원 ‘방송심의위원회 1987년 해제곡 목록’에서 ‘부두의 이별’은 금지번호 540번으로 확인된다.

목록에는 ‘부두의 이별 / 월견초 / 이인권 / 이수미 / 표절’이라고 기록돼 있다. 즉 월견초 작사, 이인권 작곡, 이수미 가창이라는 정보와 함께 방송금지 사유가 ‘표절’로 명시돼 있다.

여기서 기록의 범위를 정확하게 구별해야 한다. 국가기록원 자료는 ‘표절’이라는 당시 심의 판정을 확인해주지만 어떤 노래를 표절했다고 판단했는지, 어느 선율을 문제 삼았는지까지는 이 목록에서 설명하지 않는다.

따라서 특정 외국곡이나 일본곡을 원곡으로 지목할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유사곡을 임의로 연결해서는 안 된다. 확인되는 것은 ‘부두의 이별’이 표절을 사유로 방송금지됐고, 1987년 해제곡 목록에 포함됐다는 사실까지다.

‘여고시절’ 이전의 한 장면

이수미의 경력을 대표곡 중심으로 보면 1972년 ‘여고시절’에서 이야기가 크게 시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1971년 음반을 펼치면 그보다 앞선 시간이 상당히 촘촘하다.

‘무정한 배’, ‘그리움은 별빛따라’, ‘눈물이 보일까봐’, ‘여자이기에’, 그리고 OL-921의 ‘부두의 이별’, ‘당신곁을 떠납니다’, ‘밤에 우는 새’ 같은 노래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수미의 ‘부두의 이별’은 그 시절 한 장의 합동 LP를 여는 대표곡이었다. 그리고 훗날 국가기록원 자료를 통해 표절을 이유로 방송금지됐던 사실까지 확인된다. ‘여고시절’이라는 큰 성공 이전의 이수미를 다시 살펴볼 때 지나치기 어려운 1971년의 한 기록이다.

홍이주의 ‘고향 떠난 사나이’는 1971년 4월 14일 오아시스레코드 OL-921에서 이수미의 ‘부두의 이별’과 함께 음반 제목에 올라간 노래다. Side A를 이수미의 ‘부두의 이별’이 열었다면, 음반을 뒤집은 Side B 첫 번째 곡은 홍이주의 ‘고향 떠난 사나이’였다.

1971년 오아시스레코드 음반목록에는 OL-921이 ‘이수미·홍이주 [부두의 이별 / 고향 떠난 사나이]’로 기록돼 있다. 홍이주의 이름이 음반의 대표 가수 가운데 한 사람으로 명확하게 남아 있는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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