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천강 사랑 – 김태희 –
김태희의 ‘남천강 사랑’은 1971년 오아시스레코드 OL-932에서 확인되는 노래다. 월견초가 작사하고 박시춘이 작곡했으며, 밀양 남천강을 무대로 사랑했던 사람을 기다리는 이야기를 담았다. 같은 음반의 또 다른 대표곡은 나훈아의 ‘밀양아가씨’였다. 한 장의 레코드에 밀양을 제목과 노랫말에 품은 두 작품이 나란히 자리했던 것이다.
오아시스레코드 음반번호 자료는 OL-932를 ‘김태희·나훈아 [남천강 사랑 / 밀양아가씨]’로 정리하며 1971년 4월 1일 음반으로 기록한다. 현재 들을 수 있는 오아시스 디지털 복원판에서도 김태희의 ‘남천강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음원사이트에 표시되는 2013년 날짜는 원곡의 발표일이 아니라 옛 오아시스 음원을 디지털로 복원해 유통한 시점이다.
김태희 ‘남천강 사랑’, 남천강에서 시작된 이별
‘남천강 사랑’은 실제 장소를 노래의 중심에 놓는다. 남천강은 밀양을 흐르는 강이다. 노랫말에서도 강물과 물새, 꽃이 피는 계절과 강 언덕이 이어지며 이 풍경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과 이별이 펼쳐진다.
두 사람은 남천강에서 사랑을 맹세했지만 한 사람은 떠난다. 남겨진 화자는 시간이 지나도 그 사람을 잊지 못한다.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꽃도 다시 피지만 떠난 사람에게서는 돌아온다는 기약이 없다.
그래도 화자는 강 언덕을 떠나지 못한다. 이 노래가 그리는 기다림은 특별한 사건을 계속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다. 사람은 떠났지만 강은 그대로 있고, 계절도 반복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이별의 시간을 드러낸다.
김태희 ‘남천강 사랑’ 복원 음원을 통해서도 이러한 노래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가사는 길지 않지만 남천강이라는 장소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의 중심을 지킨다.
월견초 작사·박시춘 작곡, 두 이름과 밀양
‘남천강 사랑’을 만든 사람은 작사가 월견초와 작곡가 박시춘이다. 후대 음원정보뿐 아니라 공공기록에서도 두 사람의 이름이 확인된다.
국가기록원 방송금지 해제곡 자료에는 ‘남천강 사랑’이 월견초 작사, 박시춘 작곡, 김태희 가창으로 기록돼 있다.
박시춘은 밀양 출신의 작곡가다. 월견초는 본명 서정권으로 알려져 있으며, 밀양의 옛 대중가요를 정리한 지역 자료에서는 월견초 역시 밀양 출신으로 소개한다. 이 자료는 두 사람이 고향 밀양을 소재로 ‘남천강 사랑’과 ‘밀양아가씨’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따라서 노래에 등장하는 남천강을 단순히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선택한 가상의 장소로 볼 수는 없다. 실제 밀양의 지명이며, 노래를 만든 사람들의 고향과도 연결돼 있었다.
‘남천강 사랑 / 밀양아가씨’, 한 장에 담긴 밀양
OL-932의 음반 제목을 살피면 ‘남천강 사랑’의 성격이 더욱 분명해진다. 김태희의 ‘남천강 사랑’과 나훈아의 ‘밀양아가씨’가 양쪽의 대표 제목으로 사용됐다.
‘남천강 사랑’이 남천강에서 맺어진 사랑과 기다림을 노래한다면 ‘밀양아가씨’는 제목부터 밀양이라는 고장을 내세운다. 노랫말에도 밀양의 여러 장소가 등장한다.
두 작품이 같은 창작자 조합에서 나왔고 한 음반의 대표곡으로 함께 묶였다는 사실은 OL-932를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다. 단순히 서로 관계없는 김태희와 나훈아의 노래를 모아놓은 것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음반을 대표하는 두 작품에는 밀양이라는 공통된 공간이 있었다.
다만 이 LP 전체를 김태희와 나훈아 두 사람의 독집으로 보기는 어렵다. 현재 지니의 복원 음반자료도 Various Artists 음반으로 분류하고 있다. 여러 가수의 취입곡을 한 장에 함께 싣던 당시 합동음반의 성격을 가진다.
‘소양강 처녀’의 김태희가 부른 남천강
김태희의 활동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가운데 하나가 ‘소양강 처녀’다. 벅스의 김태희 가수자료에서도 김태희를 ‘소양강 처녀’의 오리지널 가수로 소개한다.
OL-932의 복원판에는 ‘남천강 사랑’과 ‘소양강 처녀’가 함께 들어 있다. 김태희의 목소리를 통해 소양강과 남천강이라는 서로 다른 강의 이름이 한 음반에서 만나는 셈이다.
물론 두 작품의 이야기는 별개다. ‘남천강 사랑’에서는 밀양 남천강이 사랑의 약속이 이루어진 장소이자 이별 뒤 기다림이 계속되는 장소로 등장한다. 그래서 이 노래에서는 강 이름 자체가 이야기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
OL-946에서도 다시 대표곡으로 등장하다
‘남천강 사랑’은 OL-932에만 남지 않았다. 같은 시기 오아시스에서 나온 다른 합동 LP에도 다시 수록됐다.
대표적인 음반이 OL-946 ‘너를 위하여 / 남천강 사랑’이다. 오아시스 OL-946 디지털 복원자료를 보면 김원일의 ‘너를 위하여’, ‘왜 몰랐나’, 김유리의 ‘사공 아줌마’, 나훈아의 ‘진주처녀’, 남미랑의 ‘잊어야지’에 이어 김태희의 ‘남천강 사랑’이 나온다.
LP의 양면 구조로는 김태희의 ‘남천강 사랑’이 Side B 첫 번째 곡이다. 이어 김태희의 ‘총각손님’, 김부자의 ‘열여덟 소녀’, 조미미의 ‘갯마을 처녀’, 이영숙의 ‘바람아 봄바람아’가 이어진다.
OL-932에서 이미 음반의 대표 제목이었던 작품이 OL-946에서도 다시 한쪽 면을 여는 곡이자 대표 제목으로 사용됐다. 적어도 오아시스의 당시 음반 편성에서 ‘남천강 사랑’이 한 번 수록되고 끝난 곡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만 같은 노래가 여러 LP에 들어 있다고 해서 매번 새로 녹음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당시에는 기존 취입곡을 다른 합동음반이나 선집에 다시 싣는 일이 많았다. 별도의 재녹음 자료가 확인되지 않는 한 수록 이력과 녹음 이력은 구별해서 보는 것이 맞다.
국가기록원에서 확인되는 방송금지 기록
‘남천강 사랑’에는 음반 수록기록과는 전혀 다른 중요한 흔적도 남아 있다. 방송금지 기록이다.
국가기록원 ‘방송심의위원회 1987년 해제곡 목록’에서 ‘남천강 사랑’은 474번으로 올라 있다.
이 자료에는 곡명과 함께 월견초 작사, 박시춘 작곡, 김태희 가창이 명시돼 있으며, 금지 사유에는 ‘왜색’이라고 적혀 있다.
당시 금지곡 목록에는 왜색뿐 아니라 저속, 퇴폐, 비탄, 표절 등 여러 사유가 등장한다. ‘남천강 사랑’은 그 가운데 왜색으로 분류된 노래였다.
여기서 기록이 말하는 범위를 넘어가지는 않아야 한다. 국가기록원 목록에는 ‘남천강 사랑’의 어느 선율이나 어느 표현을 왜색이라고 판단했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특정 일본 노래를 모방했다거나 특정 부분의 선율 때문에 금지됐다고 단정할 자료도 이 목록에는 제시돼 있지 않다.
따라서 확인되는 사실은 분명하다. ‘남천강 사랑’은 방송금지 대상이었으며, 1987년 해제곡 목록에 기록된 금지 사유는 ‘왜색’이었다.
50여 년 뒤 다시 불린 ‘남천강 사랑’
1971년 김태희가 불렀던 이 노래는 반세기가 지난 뒤 새로운 목소리로 다시 등장했다.
가수 박채영이 ‘남천강 사랑’을 리메이크했고, 박채영의 ‘남천강 사랑’ 음원자료에는 월견초 작사, 박시춘 작곡, 한태진 편곡으로 기록돼 있다.
이 리메이크에는 지역에서 전하는 과정도 남아 있다. 밀양의 현재 가수들을 다룬 지역 기록에서는 김태희가 불렀던 옛 ‘남천강 사랑’을 다시 알리기 위해 박시춘과 월견초의 가족에게 박채영의 리메이크 의사를 전하고 승낙을 얻었다고 기록한다.
이것은 1971년 원곡 제작 당시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십 년 뒤 리메이크 과정에서 전해진 기록이다. 원곡의 제작 비화와 구별할 필요는 있지만, 한동안 묻혀 있던 밀양의 노래가 다시 지역에서 발견되고 불렸다는 후일담으로 남아 있다.
남천강은 그대로 흐르고 있었다
‘남천강 사랑’의 이야기는 화려하지 않다. 강가에서 사랑을 약속했던 사람이 떠났고 한 사람만 남았다. 계절이 지나도 기다림은 끝나지 않는다.
그 사이 꽃은 다시 피고 물새도 돌아온다. 남천강도 계속 흐른다. 사람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자연의 시간은 한 번도 멈추지 않는다.
1971년 원반에서 출발해 이 노래의 흔적을 따라가면 그 뒤로 여러 기록이 이어진다. OL-932에서는 나훈아의 ‘밀양아가씨’와 함께 밀양을 노래하는 대표곡으로 등장했고, OL-946에서는 다시 Side B 첫 곡으로 실렸다. 방송심의에서는 ‘왜색’이라는 사유로 금지됐으며 1987년 해제곡 목록에 이름을 남겼다. 수십 년 뒤에는 박채영의 목소리로 다시 녹음됐다.
김태희의 ‘남천강 사랑’은 그렇게 한 시대의 LP에서 출발해 밀양이라는 장소, 당시의 방송심의, 그리고 후대의 재발견까지 이어졌다. 노래 속 사랑했던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남천강은 남았고, 그 강의 이름을 품은 노래도 50여 년의 시간을 건너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