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향 – 배성 –

같은 음반의 앞면에는 배성의 ‘망향’

같은 음반 앞쪽의 중심곡은 배성의 ‘망향’이다. ‘부두의 아가씨’가 배를 타고 떠나는 한 사람을 바라보는 항구의 이별을 다룬다면, ‘망향’은 고향을 떠난 사람이 부모형제와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노래다. 두 곡 모두 떠남과 거리의 감정을 품고 있지만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부두, 다른 하나는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을 바라본다는 차이가 있다.

이렇게 보면 《망향 / 부두아가씨》라는 음반 제목은 서로 전혀 다른 노래 두 곡을 기계적으로 나란히 놓은 것이 아니다. 한쪽에는 고향을 그리는 남자의 목소리, 다른 쪽에는 연락선을 바라보는 여인의 이별이 자리한다. 1970년 한 장의 합집 LP에서 ‘떠나 있음’이라는 서로 다른 장면이 앞뒤로 마주 보고 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보는 ‘부두의 아가씨’

김부자의 ‘부두의 아가씨’는 후대의 대표곡 목록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언급되지만, 1970년 오아시스·성음 음반 제작방식을 보여주는 곡으로는 의미가 분명하다. 여러 가수의 신곡을 한 장에 묶고, 앞면과 뒷면의 첫 곡을 음반 표제에 나란히 세웠던 시기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노래 안에서는 멀어지는 연락선 하나가 이별의 전부를 대신한다. 화려한 사연을 덧붙이지 않아도 배가 사라지는 방향을 바라보다 돌아서는 여인의 모습만으로 ‘부두의 아가씨’라는 제목이 충분히 설명되는 노래다.

배성의 ‘망향’은 1970년 SEL-1-746 《망향 / 부두아가씨》의 앞면 첫 곡으로 실린 노래다. 그러나 이 곡의 이력은 그 음반 한 장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망향’은 이미 같은 해 다른 오아시스 음반들에 수록됐고, 자료에는 DBS 동아방송 연속극 주제가라는 표기도 남아 있다.

배성 ‘망향’은 DBS 연속극 주제가였다

오아시스가 복원한 남국인 작곡 제2집 《사랑은 꽃잎인가 / 후회없이 가련다》에는 배성의 ‘망향’을 ‘DBS 연속극 주제가’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음반에는 민주, 나훈아, 배성, 이상열, 김상희, 이영숙, 이래도 등이 참여했으며 ‘망향’은 앞면 여섯 번째 곡으로 수록돼 있다. 남국인 작곡 제2집 복원 수록표 보기

별도 곡 페이지 역시 제목 자체를 ‘망향 (DBS 연속극 주제가)’로 표기한다. 따라서 ‘망향’이 방송극과 관련됐다는 사실은 후대의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오아시스가 복원한 당시 음반 정보에서도 확인된다. ‘망향’ DBS 연속극 주제가 표기 보기

후대에 정리된 배성의 생애 자료에는 그가 고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무렵 동아방송 연속극 ‘망향’ 주제가를 취입했고, 곡이 1970년 음반으로 이어졌다고 전한다. 배성의 초기 활동이 ‘사나이 부르스’ 한 곡에서 끝나지 않고 방송극 주제가와 신곡 음반으로 빠르게 확대되던 시점이었다.

한운사가 쓰고 ‘고향’이 곡을 붙인 노래

ManiaDB의 작가 자료에는 ‘망향’을 한운사 작사·고향 작곡으로 기록한다. 일부 후대 자료에서는 작곡자를 남국인으로 적는데, 당시 음반자료에서 ‘고향’이라는 이름이 남국인과 함께 사용된 사례가 있어 표기 차이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망향’ 작사·작곡 정보 보기

한운사는 방송극과 영화·대중가요를 넘나들며 활동했던 극작가이자 작사가였다. ‘망향’의 가사가 평범한 연애 이별보다 ‘고향을 떠난 사람’의 독백에 집중하는 것도 방송극 주제가라는 성격과 맞물려 읽을 수 있다.

가사는 사랑보다 고향을 묻는다

가사 속 화자는 깊은 밤 별을 바라보며 고향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 그리움의 대상은 연인이 아니라 부모형제와 친구들이다. 멀리 떠나온 시간이 길어지면서 고향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까지 잊었을지 걱정하고, 언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를 되묻는다. 배성 ‘망향’ 가사와 음원 정보 보기

두 번째 절에서는 물질적으로 잘 먹고 좋은 옷을 입는 일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고향과 사람을 잃어버린 상태에서는 생활의 풍족함만으로 마음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이 노래의 중심이다. 제목 ‘망향’은 단순히 고향을 떠올린다는 뜻보다 돌아가고 싶어도 쉽게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의 거리감을 품고 있다.

1970년 여러 음반에 반복해 실린 ‘망향’

‘망향’은 한 장의 음반에만 머물지 않았다. 1970년 배성·송대관 음반 《무정한 여인 / 당신은 떠났어도》의 앞면 두 번째 곡으로도 확인된다. ManiaDB 수록표에는 앞면 첫 곡 ‘무정한 여인’에 이어 ‘망향’이 배치돼 있다. 1970년 배성·송대관 음반 수록기록 보기

또 다른 오아시스 복원 음반 《속삭여 주세요 / 망향》에서도 ‘망향’은 배성의 곡으로 수록돼 있다. 같은 해 여러 합집과 작곡집에 재수록됐다는 사실은 이 노래가 배성의 초기 음반 활동에서 지속적으로 활용된 작품이었음을 보여준다. 《속삭여 주세요 / 망향》 수록정보 보기

그 뒤 SEL-1-746 《망향 / 부두아가씨》에서는 마침내 ‘망향’이 음반 표제와 전체 첫 곡에 놓인다. 성음 음반번호 자료는 이 판을 1970년 6월 22일 발매작으로 기록한다. SEL-1-746 성음 음반 기록 보기

고등학생 가수 배성의 빠른 상승기

배성은 본명 배태규로, 1969년 ‘사나이 부르스’를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아직 고등학생이었다. 초기에는 남국인과 연결된 노래들을 취입했고, ‘망향’이 등장한 1970년에는 ‘무정한 여인’ 등 후속 음반이 이어지면서 활동 폭이 빠르게 넓어졌다.

배성이 훗날 직접 들려준 초기 활동 회고를 정리한 자료에서는 작곡가 남국인이 그의 노래를 듣고 취입을 권했고, 처음 녹음한 곡이 ‘사나이 부르스’와 ‘세월은 흘러도’였다고 전한다. 같은 자료는 고등학교 졸업 무렵 ‘망향’, ‘무정한 여인’ 등이 잇달아 발표되며 그의 이름이 빠르게 알려졌다고 기록한다. 배성 초기 활동 회고 보기

같은 음반의 뒷면 첫 곡, 김부자 ‘부두의 아가씨’

후대 디지털 복원판에서 《망향 / 부두 아가씨》는 ‘망향’을 전체 1번, 김부자의 ‘부두 아가씨’를 전체 7번으로 배치한다. 두 곡 사이에는 이영숙 ‘잊으려 해도’, 한동일 ‘낙서’, 김상희 ‘당신이 그리워질때’, 원중 ‘웃으며 이별할때’, 윤소영 ‘비오는 밤’이 들어 있다. 《망향 / 부두 아가씨》 전체 수록곡 보기

‘망향’이 부모형제와 친구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노래한다면, 김부자의 ‘부두의 아가씨’는 연락선을 타고 떠나는 사람을 남겨진 여인이 바라보는 노래다. 서로 다른 가수가 부른 두 곡이지만 한 장의 음반 앞뒤에 놓고 보면 ‘떠난 곳’과 ‘떠난 사람’을 각각 바라보는 두 개의 이별 장면처럼 읽힌다.

시간이 지나 다시 듣는 ‘망향’

배성의 ‘망향’은 1970년 한 차례 발매되고 사라진 수록곡이 아니다. DBS 연속극 주제가라는 출발점, 여러 오아시스 음반의 반복 수록, 그리고 마침내 《망향 / 부두아가씨》의 표제곡으로 배치되는 흐름이 차례로 남아 있다.

가사도 이 노래의 위치를 분명하게 만든다. 잘 먹고 잘 입는 생활보다 부모형제와 친구들이 있는 고향을 더 그리워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향수’라는 말을 추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언제 돌아갈 수 있느냐는 한 가지 질문을 끝까지 붙들고 있다는 점이 배성 ‘망향’의 가장 오래 남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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