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 쉐그린 –
쉐그린 ‘동물농장’, 원곡은 따로 있었다
‘동물농장’을 쉐그린의 노래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 곡을 쉐그린의 순수 창작곡으로 보기는 어렵다. 쉐그린이 부르기 전 이미 서수남·하청일과 관련된 음반에서 같은 계열의 노래가 확인된다.
아리랑 브라더스 복각 음반자료에는 서수남과 하청일이 결성했던 아리랑 브라더스의 초기 레퍼토리 가운데 ‘동물농장’이 포함돼 있다. 아리랑 브라더스 옛 LP 자료에서도 이 작품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멜로디의 뿌리는 더 멀리 간다. ‘동물농장’에 사용된 선율은 해리 벨라폰테가 불렀던 ‘I Do Adore Her’와 연결된다. 해리 벨라폰테의 음악을 다룬 채널예스 자료에서도 그의 음악이 국내 포크와 번안가요에 미친 영향을 살펴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어 ‘동물농장’의 내용이 원곡 가사를 그대로 옮긴 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익숙한 외국 선율 위에 여러 동물과 울음소리를 차례로 등장시키는 한국어 노랫말을 얹어 전혀 다른 성격의 노래로 만들어졌다.
개와 고양이, 오리와 돼지가 노래 안으로 들어오다
‘동물농장’의 재미는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라 소리에 있다. 여러 동물이 차례로 등장하고 각각의 울음소리가 리듬 안으로 들어온다. 사람의 목소리가 악기처럼 움직이며 동물의 소리를 흉내 내는 방식이다.
쉐그린의 두 사람이 주고받는 목소리는 이 노래의 장난스러운 성격과 잘 맞았다. 진지한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던 당시 가요들과 나란히 놓으면 더욱 이색적으로 들리는 작품이다.
후대에도 이 노래는 쉐그린을 소개하는 자료에서 빠지지 않았다. KTV의 쉐그린 ‘동물농장’ 영상자료에서도 오래된 대중가요 프로그램을 통해 이 노래가 다시 소개됐다.
이태원과 전언수, 초기 쉐그린
1971년 KLS-14 당시 쉐그린은 이태원과 전언수가 함께하던 듀오였다. 쉐그린은 이후 멤버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1970년대 전체 활동을 한 구성으로 묶어서는 안 된다.
전언수의 생애를 전한 연합뉴스 기사에서도 쉐그린의 초기 활동과 ‘동물농장’이 언급된다. 전언수는 이 노래가 쉐그린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작품으로 회고했다.
이 기록은 당시 판매량이나 순위표와는 성격이 다르다. 후대 당사자의 회고라는 점을 구별해야 하지만, 쉐그린 구성원이 직접 ‘동물농장’을 초기 활동의 중요한 노래로 기억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1971년 5월 29일, YMCA에 모인 사람들
KLS-14가 나온 직후 쉐그린의 활동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기록도 있다.
주간한국의 쉐그린 회고기사에 따르면 쉐그린은 1971년 5월 29일 서울 YMCA 강당에서 첫 리사이틀을 열었다. 기사에는 약 2천 명의 관객이 몰렸다고 전한다.
무대에는 쉐그린뿐 아니라 투 에이스, 양희은, 이용복 등이 함께했고, 쉐그린은 ‘동물농장’을 비롯해 당시의 레퍼토리를 들려줬다. 새 노래 ‘미련’과 ‘그리움’도 이 무대에서 소개됐다.
공연 뒤 사인회가 약 두 시간 이어졌다는 내용도 같은 기사에 남아 있다. 음반이 나온 지 불과 한 달 남짓 지난 시점의 공연기록이라는 점에서 KLS-14 시기의 쉐그린이 실제 무대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다.
1971년의 쉐그린을 남긴 ‘동물농장’
‘동물농장’은 외국 선율에서 출발했고 쉐그린보다 먼저 이 노래를 부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쉐그린의 창작곡이라고 설명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쉐그린의 역사에서는 별도의 의미를 갖는다. 이태원과 전언수의 듀오가 활동하던 1971년 KLS-14에 실렸고, 당사자의 후대 회고에서도 자신들의 이름을 알렸던 노래로 등장한다.
쉐그린의 ‘동물농장’에는 1970년대 초 번안가요 문화와 남성 듀오의 코러스, 익살스러운 노랫말이 한꺼번에 들어 있다. 사랑과 이별 일색이던 가요 가운데 동물들의 소리를 끌어들인 이 노래는 쉐그린 초기의 자유롭고 장난기 있는 모습을 지금까지 전해준다.
쉐그린의 ‘미련’은 1971년 유니버어살레코드 KLS-14 ‘쉐그린 최신앨범 Vol.1 – 사랑해요 당신을 / 동물농장’의 Side A 세 번째 곡이다. 정성조가 만든 작품으로, 떠난 사람을 잊지 못한 채 가을의 풍경 속을 걷는 마음을 담았다. 무엇보다 이 노래는 음반 발매 직후 열린 쉐그린의 첫 리사이틀에서 ‘새 노래’로 소개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