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금꽃 피는 고향 – 패티김 –
패티김의 ‘능금꽃 피는 고향’은 1971년 3월 세상에 나온 노래로, 사랑의 기억과 고향의 풍경을 대구의 팔공산·금호강·능금꽃에 겹쳐 놓았다. 길옥윤이 작사와 작곡을 맡았고, 발표 뒤에는 ‘대구찬가’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한 도시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았다.
이 곡의 특징은 막연한 고향을 노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노랫말 속 지명은 분명하다. 팔공산을 바라보는 거리와 금호강의 물줄기가 등장하고, 그 사이에 대구를 상징하던 능금꽃이 놓인다. 대구 지역문화 자료에서도 이 곡을 1971년 발표된 대구 관련 대중가요로 정리하고 있다. 대구역사문화대전 ‘능금꽃 피는 고향’
‘능금꽃 피는 고향’이 처음 음반에 실리던 때
대구역사문화대전과 매일신문의 기록은 ‘능금꽃 피는 고향’의 발표 시기를 1971년 3월로 적고 있다. 당시 LP로 처음 발표됐으며, 작사·작곡자는 모두 길옥윤, 가창은 패티김이다. 매일신문의 노래비 건립 기사 역시 1971년 3월 발표곡으로 기록한다.
현재 확인되는 원반 자료에서 이 곡은 길옥윤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한 패티김의 1971년 LP 《Patti Kim ’71》에 들어 있다. 음반번호는 가12345로 전해지며, 앞면에는 ‘님에게’, ‘대한민국 찬가’, ‘능금꽃 피는 고향’, ‘하와이 연정’, ‘빛과 그림자’가 차례로 배치됐다. ‘능금꽃 피는 고향’은 Side A 세 번째 곡이었다. 뒷면은 ‘장미와 빤따롱’을 시작으로 ‘미스터리 흥분하다’, ‘4월이 가면’, ‘연자마을 아가씨’, ‘연인의 길’이 이어진다. ManiaDB 패티김 음반 자료
당시 음반을 소개한 수집 자료에는 이 LP가 ‘길옥윤 작·편곡집’이며 신세기 레코드 가12345로 표시돼 있다. 후대 DB에서는 제작사 표기가 ‘신세계’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 회사명 표기에 차이가 있지만, 수록 순서와 1971년 음반이라는 점은 서로 일치한다. 1971년 원반 수록곡 자료
길옥윤이 대구를 노랫말 속에 넣은 방식
‘능금꽃 피는 고향’은 길옥윤이 작사와 작곡을 모두 맡았다. 가사에서는 능금꽃이라는 지역의 상징과 함께 팔공산, 금호강, 대구라는 실제 지명이 직접 등장한다. 당시 대구가 사과 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던 사실을 노래의 배경으로 삼고, 그 안에 두 사람이 함께 걸었던 거리와 변하지 않는 그리움을 배치했다.
따라서 이 곡은 두 층의 이야기를 함께 가진다. 하나는 고향을 향한 노래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고향에서 함께 꿈을 꾸었던 사람을 기억하는 사랑 노래이다. 시간이 흐르더라도 마음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금호강의 계속 흐르는 물과 나란히 놓인다. 대구라는 도시 이름이 후렴의 귀착점 역할을 한다.
패티김과 길옥윤이 함께하던 1971년
이 음반은 패티김의 목소리와 길옥윤의 작품 세계가 긴밀하게 맞물려 있던 시기의 기록이다. 같은 LP에 ‘님에게’, ‘대한민국 찬가’, ‘장미와 빤따롱’ 같은 곡이 함께 실렸고, 이전에 발표했던 ‘하와이 연정’, ‘빛과 그림자’, ‘4월이 가면’, ‘연인의 길’도 다시 배치됐다. 새 작품과 이미 알려진 레퍼토리를 한 음반 안에서 함께 들려주는 구성이다.
후대 매일신문은 패티김과 길옥윤이 1966년 결혼했고, 두 사람이 부부로 지내던 기간에 1971년 ‘능금꽃 피는 고향’이 나왔다고 기록했다. 이 사실은 곡의 가사를 두 사람의 실제 사생활과 직접 연결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당시 패티김의 주요 작품에서 길옥윤이 작사·작곡자로 깊게 관여하고 있었던 시기를 보여준다. 매일신문 ‘능금꽃 피는 고향에 숨은 인연’
1970년대 대구에서 ‘대구찬가’가 되다
이 노래에는 정식 제목과 함께 ‘대구찬가’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은 이 곡이 대구 시민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높이기 위한 성격을 지닌 노래로 1971년 LP를 통해 처음 나왔고, 1970년대 대구 시민들에게 불렸다고 정리한다. 대구역사문화대전
2009년 서울신문도 이 곡이 대구 사과가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던 1971년 음반으로 발매됐다고 전했다. 오랫동안 노래방 반주곡에서도 사라져 있던 곡을 대구시가 다시 찾아 금영과 TJ미디어의 반주기에 수록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지역 노래로서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다. 서울신문 2009년 기사
30여 년 뒤 다시 찾아낸 한 장의 LP
이 노래의 후대 이야기도 독특하다. 매일신문은 2009년 ‘능금꽃 피는 고향’의 LP 앞뒤 표지와 악보를 소개하면서, 이 곡이 1971년 LP로 첫선을 보였고 1970년대 라디오에서 들리다가 차츰 잊혔다고 전했다. 이후 대구시 관계자들이 음반과 악보를 다시 찾아 노래방 반주기에 등록하면서 곡이 지역사회로 돌아왔다. 매일신문 ‘30년만에 돌아오는 대구 노래’
2012년 매일신문은 당시 대구시 농산유통과장이었던 최주원이 평광동 사과재배단지 주민들에게서 이 노래 이야기를 듣고 LP와 악보를 찾아 나섰다고 기록했다. 이렇게 다시 발굴된 곡은 대구의 각종 행사에서 사용됐고, 삼성 라이온즈 응원곡으로도 이어졌다. 매일신문 ‘능금꽃 향기로운 패티김 대구찬가’
금호강변에 세워진 ‘능금꽃 피는 고향’ 노래비
노래가 발표된 지 40여 년 뒤에는 실제 가사 속 장소와 가까운 곳에 노래비도 세워졌다. 2013년 대구 동구는 아양철교 인근 금호강변에 ‘능금꽃 피는 고향’ 노래비를 건립했고, 같은 해 10월 10일 제막식이 열렸다. 대구역사문화대전에는 이 날짜가 노래비 제막일로 기록돼 있다. 대구역사문화대전 관련 기록
동아일보 역시 노래비 건립 당시 패티김이 추진위원회에 참여했다고 전하며 이 노래를 1971년 3월 발표작으로 소개했다. 기사에는 대구 사과와 팔공산, 금호강이 노래에 담겨 있으며 대구 시민들이 ‘대구찬가’라는 이름으로 불러 왔다는 지역의 기억도 함께 실려 있다. 동아일보 2013년 기사
‘능금꽃 피는 고향’에 남은 대구의 풍경
이 곡을 지금 다시 보면 1971년 대중가요 한 곡이 지역의 생활사와 결합해 살아남은 과정을 읽을 수 있다. 원래 음반에서는 Side A의 세 번째 곡이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대구찬가’라는 별칭을 얻었고, 한동안 잊혔다가 다시 음반과 악보가 발굴돼 노래방과 야구장, 지역 행사로 돌아왔다.
팔공산과 금호강, 능금꽃이라는 구체적인 장소와 풍경을 길옥윤이 노랫말에 남겼고 패티김이 그 문장을 노래했다. 그래서 ‘능금꽃 피는 고향’은 1971년 패티김의 한 수록곡이라는 기록과 함께, 대구라는 도시가 자신의 옛 노래를 다시 찾아낸 사례로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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