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어머니의 비밀 – 나훈아 –

나훈아의 ‘두 어머니의 비밀’은 1970년 초 음반에서 확인되는 노래다. 제목처럼 노래의 중심에는 한 사람을 둘러싼 두 어머니, 곧 ‘낳은 정’과 ‘기른 정’이 놓여 있다.

그런데 이 곡을 따라가다 보면 가사의 사연만큼이나 눈에 걸리는 기록 하나를 만나게 된다. 1970년 3월 9일, ‘두 어머니의 비밀’은 방송심의에서 ‘표절(곡)’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월견초 작사, 남국인 작곡, 나훈아 노래라는 정보까지 국가기록원 자료에 그대로 남아 있다. 국가기록원 ‘금지곡 및 해제곡 목록’

나훈아가 막 정상권으로 올라가던 시절에 발표됐지만, 지금 널리 불리는 대표곡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은 노래다.

이 노래가 세상에 나오던 때

현재 확인되는 가장 이른 음반 자료는 1970년 ‘나훈아 최근 힛트곡과 신곡전집’이다.

성음제작소 음반 레이블을 정리한 자료에는 SEL-1-666, ‘나훈아 최신 힛트곡과 신곡전집 [두 어머니의 비밀]’이라는 제목과 함께 1970년 1월 1일이 기록돼 있다. 이 날짜는 당시 실물 레이블 자료를 정리한 수집 자료에서 확인되는 것이어서 발매일 자체는 조금 조심스럽게 볼 필요가 있지만, 적어도 국가기록원의 1970년 3월 9일 심의 기록보다 앞서 음반으로 나왔다는 흐름은 자연스럽다. 성음제작소 음반 레이블 자료

작사는 월견초, 작곡은 남국인이다. 이 두 사람의 이름은 후대 음원 정보뿐 아니라 1970년 방송심의 기록에서도 함께 확인된다.

이 곡은 같은 해 5월 15일 제작된 것으로 기록된 성음 SEL-1-726 ‘남국인 작곡 제2집 – 사랑은 꽃잎인가 / 후회없이 가련다’에도 다시 수록됐다. 이 음반에서는 A면 세 번째 곡으로 ‘두어머니의 비밀(영화주제가)’이 들어 있다. 남국인 작곡 제2집 수록 자료

따라서 이 남국인 작곡집을 최초 수록 음반으로 보는 것은 어렵다. 이미 그보다 앞선 1970년 초 나훈아 음반과 3월 방송심의 기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주제가’라는 표기가 남아 있다

여러 음반 자료에는 이 노래 뒤에 ‘영화주제가’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벅스에 복원된 ‘남국인 작곡 제2집’에서도 제목이 ‘두 어머니의 비밀 (영화 주제가)’로 등록돼 있다. 벅스 ‘두 어머니의 비밀’ 곡 정보

다만 현재 확인되는 자료만으로는 이 노래가 어떤 영화에서 처음 사용됐는지, 영화 제작과 노래가 어떤 과정으로 연결됐는지를 확정하기 어렵다.

1971년에 발매된 나훈아의 ‘영화 데뷔 작품 주제가’ 음반에도 ‘풋사랑’과 함께 ‘두 어머니의 비밀’이 다시 들어갔지만, ‘두 어머니의 비밀’ 자체는 이미 1970년 심의기록에 등장한다. 벅스 ‘영화 데뷔 작품 주제가’ 음반

두 어머니의 비밀에 담긴 이야기는 무엇이었나

노래는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부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화자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앞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한다. 그리고 노래 한가운데에 이 곡의 핵심이 되는 말이 등장한다.

낳은 정과 기른 정.

한 사람에게 생명을 준 어머니와 그 사람을 길러낸 또 한 명의 어머니가 있다는 이야기다. 화자는 두 사람 사이에서 자신의 잘못을 뒤늦게 뉘우치고, 마지막에는 두 어머니를 동시에 부른다.

그래서 이 노래는 일반적인 ‘어머니 그리움’의 노래와 조금 다르다. 한 어머니를 잃은 슬픔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출생과 양육이라는 서로 다른 두 관계를 한꺼번에 끌어안고 뒤늦은 후회를 말한다.

제목에 들어간 ‘비밀’도 결국 이 두 관계에서 비롯된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가 실제 나훈아 개인의 가족사에서 만들어졌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1970년 3월 9일, 뜻밖의 기록이 남았다

이 곡에서 가장 분명하게 확인되는 비하인드는 방송심의 기록이다.

국가기록원의 ‘방송심의위원회 1987년 미 해제곡 목록’에는 ‘두 어머니의 비밀’이 수록돼 있다.

기록은 아주 구체적이다.

두 어머니의 비밀 / 월견초 / 남국인 / 나훈아 / 70.03.09 / 표절(곡)

같은 날짜에 도민호의 ‘돌아가는 원점’ 역시 같은 ‘표절(곡)’ 사유로 기록돼 있다. 국가기록원 방송심의위원회 미해제곡 목록

여기에서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

현재 공개된 국가기록원 목록은 어느 외국곡 또는 국내곡을 표절했다고 판정했는지까지 설명하지 않는다. 어떤 선율이 문제가 됐으며 당시 당사자들이 어떤 입장을 밝혔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도 이번 조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어떤 곡을 베꼈다’고 더 나아가 단정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1970년 3월 9일 방송심의 기록에서 이 노래가 ‘표절(곡)’로 분류됐고, 1987년 미해제곡 목록에도 그 기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 무렵 나훈아는 어디까지 올라가 있었나

‘두 어머니의 비밀’이 나오던 1970년은 나훈아가 무명 신인의 시간을 이미 벗어나고 있던 때였다.

1960년대 후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비롯해 ‘강촌에 살고 싶네’, ‘님 그리워’ 등이 알려지면서 그의 이름은 빠르게 커졌다. 경향신문이 훗날 당시를 돌아본 기사에서도 나훈아 특유의 꺾는 창법과 ‘사랑은 눈물의 씨앗’의 성공, 그리고 1970년대 초 남진과 함께 양대 인기 가수로 부상했던 과정을 짚고 있다. 경향신문 ‘거기 그 노래가 있었네 – 나훈아 사랑은 눈물의 씨앗’

1970년 연말에는 나훈아가 MBC 10대 가수에도 이름을 올렸다. 당시 이미자·배호·최희준·펄시스터즈·정훈희 등과 함께 주요 가수군에 들어가 있었다. 벅스가 정리한 연도별 한국가요 자료에서도 나훈아가 ‘두줄기 눈물’의 인기를 바탕으로 1970년 MBC 10대 가수에 선정됐다고 기록한다. 벅스 연도별 한국가요 자료

‘두 어머니의 비밀’은 바로 그런 상승기 한가운데 놓여 있던 노래였다.

다만 이 곡 자체가 당시 가요순위 몇 위까지 올랐는지, 몇 장이 팔렸는지를 보여주는 신뢰할 만한 동시대 자료는 확인하기 어렵다. 나훈아의 인기가 컸다는 사실과 이 노래 역시 큰 히트곡이었다는 주장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같은 시기 가요계에서 나훈아의 자리는 어디였나

1970년의 대중가요에는 이미자·배호·최희준 같은 기존 강자들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고, 펄시스터즈와 정훈희처럼 다른 색깔을 가진 가수들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나훈아는 정통 트로트를 자기 방식으로 밀어붙이며 빠르게 중심으로 들어갔다.

특히 이후 남진과의 경쟁이 1970년대 대중가요의 대표적인 구도로 자리 잡았지만, ‘두 어머니의 비밀’이 발표된 바로 그 시점의 나훈아를 훗날의 ‘가황’이라는 이름으로만 바라보면 당시의 모습이 흐려진다.

그는 이미 성공한 가수였지만 동시에 계속 새 음반을 내고 새로운 히트곡을 만들어야 했던 젊은 인기 가수였다.

1970년 한 해 동안 그의 음반이 쉼 없이 이어졌다는 당시 레이블 기록도 그런 활동량을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 다시 듣는 ‘두 어머니의 비밀’

‘두 어머니의 비밀’은 지금 나훈아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노래는 아니다.

그러나 1970년의 음반 목록을 따라가다 보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곡이다.

월견초가 쓴 낳은 정과 기른 정의 이야기, 남국인이 붙인 선율, 정상으로 올라가던 젊은 나훈아의 목소리가 한 곡 안에 남아 있다. 그리고 발표 직후인 1970년 3월에는 ‘표절(곡)’이라는 방송심의 기록까지 따라붙었다.

곡의 정확한 인기 순위도, 표절 판정의 구체적인 대상곡도 지금 자료만으로는 알기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남아 있는 기록 자체가 중요하다.

한때 음반 한 장에 실려 세상으로 나왔던 노래가 시간이 지나면서 대표곡의 그늘에 가려졌어도, 당시 음반번호와 심의 날짜를 따라가면 그 노래가 존재했던 자리가 다시 드러난다.

‘두 어머니의 비밀’은 나훈아가 정상으로 향하던 1970년 초, 그 바쁜 음반 활동의 한쪽에 남아 있는 조금은 아프고도 특이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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